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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밖에서 살며 알게 된 진짜 비용 [2030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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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밖에서 살며 알게 된 진짜 비용 [2030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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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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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중 안방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케아 조립형 리프트업 수납침대가 순간의 방심 사이 내려앉으며 남편 발등을 찍어버렸다. 뼈가 보일 만큼 깊게 파인 상처에 막막함이 몰려왔다.

아이를 급히 챙기고, 지역 내 사실상 유일한 종합병원인 홍천아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의사는 수지접합 전문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한다며 서울과 원주에 있는 병원 연락처를 각각 건넸다. 두 곳 모두 집에서 1시간 40분 거리였다. 당장 어디로 향해야 할지, 오늘 수술이 가능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타지 생활이라 아이를 맡길 가족도 곁에 없었고, 급히 달려온 직장 동료가 남편을 태우고 춘천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다행히 출혈은 심하지 않았고 응급처치를 마친 뒤 수술 일정을 잡고서야 긴장이 풀렸다. 수술이 필요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사고였다. 그러나 진짜 위급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몇 분, 몇 초가 생사를 가를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다면 나는 과연 이 지역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홍천은 면적이 서울의 세 배에 달하는 전국 최대 군 단위 자치단체이지만 응급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없다. 유일한 종합병원에서도 응급수술 인프라와 의료진 부족으로 중증 응급 환자는 원주, 춘천, 서울 등지로 이송되는 경우가 다수다.

홍천에 처음 이주한 해, 국가 건강검진을 앞두고 이 지역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산부인과 한 곳은 남아 있지만, 그곳도 분만은 불가능하다. 지역 여성들은 원주나 춘천으로 장거리 이동을 해 아이를 낳는다. 한 지인 부부는 난임 치료를 위해 서울 산부인과를 주기적으로 오가며 고충을 겪고 있다. 의료 인프라 부재는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나아가 위급상황에 대처 가능한 병원이 없는 의료 취약지역에 이주하고 싶을까. 그 지역을 관광하고 싶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고 싶겠는가. 지역에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외부에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조차 의료 인프라 부재로 불안을 안고 돌아가지 않을까. 그 불안은 지역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마저 갉아먹는다.


홍천군은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농·어촌 인구감소지역이다. 하지만 의료복지 사각지대가 방치된다면 지역 소멸을 늦출 방법은 요원해진다. 의료 기반은 단순한 생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자 공동체 지속의 기반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공감이나 단발성 지원이 아니다. 지역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특단의 공공의료 정책과 지속적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서울 밖 생활의 '진짜 비용'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고민하고 풀어야 할 절실한 과제임을 오늘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김도담 지역가치창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