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잃은 신뢰, 스스로 초래한 몰락
검찰제도 폐지, 입법재량의 한계 일탈
숙의와 토론을 거친 올바른 개혁 필요
검찰제도 폐지, 입법재량의 한계 일탈
숙의와 토론을 거친 올바른 개혁 필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연합뉴스 |
검찰총장, 검찰청, 검사라는 명칭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최근 몇 년간 검찰은 문제 있는 제도의 탓만 했을 뿐 스스로 정치적 중립성, 공정성, 책임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너무나 미흡했다. 국민 눈에는 편향된 '정치검찰'이라는 오명만 어른거릴 뿐, 경찰 수사의 미진함을 보완하는 책임 수사기관으로서, 직접수사 내부 통제 등 인권 보호기관 역할은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검찰 수사를 경험한 당사자와 변호사들조차 "정작 해야 할 수사는 외면하고, 하지 말아야 할 수사는 지나치게 열심히 한다"는 혹평을 쏟아낸다. 검찰 내부에서도 민생범죄를 다루는 형사부 시스템이 무너지고, 특별수사팀이나 특검 등에 대규모 수사 인력이 파견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실상 간판만 안 걸었지, 공소청이 되어가고 있다"는 탄식이 나온다.
그렇다면 '국민의 신뢰를 받던 과거의 검찰청'이 이제는 그 역할을 다한 것일까. 폐지가 타당한가.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된 '검찰청 폐지안'은 단순한 기관 명칭 변경 이상의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핵심은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여 기존 수사 기능은 경찰이나 새로운 수사기관으로 넘기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헌법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결코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
헌법은 명시적으로 '검찰'을 규정하고 있다. 1948년 제헌헌법 이후 현재까지 '검찰총장'이라는 용어는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으며, 헌법을 비롯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등 관련 법령에서도 검사는 영장 청구권,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포함해 인권 보호, 법령의 정당한 해석 등 다양한 권한을 행사하는 독립된 법집행 기관으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검찰청'이라는 명칭은 단순히 바꿀 수 있는 조직명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기관 그 자체인 것이다.
검찰 제도의 역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군정 시절인 1947년 1월 1일 사법부 명령으로 '검찰청'이라는 용어가 도입되었고, 1949년 정부 수립 이후에는 대검찰청, 고등검찰청, 지방검찰청 체계가 정착되었다. 검찰청 수장을 '검찰총장'으로 명명한 것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검사 개인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단독관청의 총책임자라는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단지 기관장의 우열과는 무관하다. 일본 또한 '검사총장'이라 부르고 있으며, 경찰청장이나 감사원장과는 명확히 구별된다.
결국 법률로 검찰 조직을 폐지하거나 명칭을 변경하려는 시도는 위헌 소지가 크다.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도 "헌법상 명문 규정에 반하여 검찰총장의 명칭을 공소청장으로 바꾸는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이 있고, 헌법 개정 없이 이를 허용할 경우 헌법의 최고 규범성을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고 적고 있다. 헌법이 수용하는 검찰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입법재량의 한계를 명백히 넘어선 것이다.
검찰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개혁의 파고에 직면하고 있다. 과거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두른 칼로 이제는 자신을 베야 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검찰개혁은 정치적 명분이 아니라 사법의 당사자인 국민을 중심에 둬야 한다. 숙의와 토론,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검찰청 폐지를 서둘러 ‘추석 차례상에 올릴 제물’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 설령 잘못된 개혁으로 ‘미운 검찰’을 없앨 수 있다고 해도,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후과를 남기게 될 것이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현행 검찰 제도는 정치 사건이 아닌 민생 사건과 일반 형사 사건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김후곤 변호사·전 서울고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