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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트럼프 청구서' 받아든 동남아…중국 우회수출 압박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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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트럼프 청구서' 받아든 동남아…중국 우회수출 압박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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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p 인상 말레이 '당혹'·캄보디아 '일단 안도'
시간 번 태국·인니 등도 한숨 돌리며 대미 구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진행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만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진행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만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서한을 발송한 14개국 중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은 동남아시아 국가였다. 예고 없는 관세 인상을 마주한 국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기존보다 낮아진 세율을 적용 받은 곳에서는 안도의 목소리가 나오는 등 희비가 엇갈렸다. 관세율 조정 기준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일각에선 미국이 중국의 우회수출 경로로 활용될 수 있는 국가에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휘두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말레이 정부 “전혀 예상치 못했다”


7일(현지시간) 미국으로부터 관세 서한을 받은 나라 중 동남아 국가는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6개국이다. 말레이시아는 4월 발표 수치 24%에서 25%로 1%포인트(p) 인상됐고, 라오스(48→40%), 미얀마(44→40%), 캄보디아(49→36%)는 인하됐다. 인도네시아(32%)와 태국(36%)은 기존 수준을 유지했다.

관세가 인상된 말레이시아는 충격에 빠졌다. 자흐룰 압둘 아지즈 말레이시아 통상산업부 장관은 현지 매체 더스타에 “미국의 발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역시 관세율이 1%p 오른 일본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전부터 협상 태도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지만, 말레이시아는 별다른 신호 없이 갑자기 ‘트럼프 청구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야권은 정부의 외교 실패를 정조준했다. 보수당 의원 완 사이풀 완 잔은 “미국에 협상단을 파견하는 데 투입된 예산이 낭비됐다”며 “무역 협상이 왜 실패했는지 분명히 설명하라”고 비판했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지난 6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가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AFP 연합뉴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지난 6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가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AFP 연합뉴스


반면 관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캄보디아와 라오스, 미얀마는 유예 기간을 확보하며 한숨 돌렸다. 전히 30~40%의 높은 관세가 적용되지만, 직전의 초고율에 비해서는 완화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라오스 라오티안타임스는 “관세 인하로 수출 기업의 부담이 일부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우회로 차단 조치?


관세 조정 기준이 불분명한 가운데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로르 비세 캄보디아·중국상업협회(CCCA) 부회장은 캄보디아 크메르타임스에 “캄보디아는 미국 달러를 공용 화폐로 사용하고, (중국·러시아 주도의) 브릭스 가입 의사를 밝힌 적도 없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미국 심기를 덜 건드린 덕이라는 얘기다.


8일 캄보디아 프놈펜 독립기념탑 앞에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프놈펜=AFP 연합뉴스

8일 캄보디아 프놈펜 독립기념탑 앞에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프놈펜=AFP 연합뉴스


미국이 말레이시아에는 관세 압박을 가하면서도 대표 ‘친중국’ 국가인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에는 상대적으로 완화된 관세율을 적용한 배경엔, 중국의 우회수출 경로 차단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일혁 KB증권 스트래티지스트는 “미국은 말레이시아를 관세로 위협해 중국 반도체 공급망을 약화하고, 미국의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관세율이 유지된 국가들은 더 적극적인 대미 구애에 나섰다. 태국은 이날 미국산 상품 구매 확대와 수입 관세 인하를 통해 대미 무역 흑자를 향후 5년 안에 70% 줄이겠다는 제안을 미국에 전달했다. 인도네시아는 미국산 주요 수입품 관세를 0%까지 낮추고 미국의 핵심 광물 분야에 대한 투자 확대도 제안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