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마루에 앉아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여덟 살 초희(楚姬)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써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상량문은 집을 지을 때 대들보를 올릴 때 쓰는 축문이다.
소녀는 상상의 궁궐인 광한전 백옥루의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받았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썼단다.
"어영차 동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새벽에 봉황타고 요궁에 들어가 날이 밝자 해가 물 밑에서 솟아올라 일만 가닥 붉은 노을 바다에 비쳐 붉도다".
허초희와 만남은 400여 년 전을 소환하는 시간여행 이었다.
초희는 집안 살림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어려운 조선시대에 태어났다.
그러나 딸에게도 자유로운 교육을 시킨 아버지와 오빠 덕분에 시를 쓰는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보인 초희는 나이의 한계와 여성이라는 굴레를 모두 벗어버렸다.
'눈 속에서도 난초를 피워내는 집'이라는 뜻의 난설헌(蘭雪軒)이라는 호(號)로 더욱 유명세를 날린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이자, 화가로 강원도 강릉 초당이 고향이다.
초희의 60년 선배인 5만원 화폐의 주인공인 신사임당의 집도 가까이에 있어 범상치 않은 두 여인을 한 걸음에 만나고 올 수 있었다.
함께 책을 읽고 시를 쓰던 '홍길동전'을 쓴 허균(許筠)을 비롯해 가족 구성원들 모두 문장에 뛰어나 '허씨 5문장'(아버지 허엽, 허성, 허봉, 허난설헌, 허균)이라 불렸다.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 초희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부모님 뜻에 따라 혼인을 했다.
풍류를 즐기며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 글 잘 쓰는 며느리를 싫어라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명주 수건에 눈물 자국 마를 날이 없었다 한다.
각별한 오누이 사이인 동생 균과는 혼인 후에도 편지를 통 해 속마음을 나누며 서로의 벗이 되어주었다.
어쩌면 문학이 그의 진솔한 마음의 소리를 담아내는 내적치유의 도구였을지도 모른다.
돌림병으로 아들과 딸을 잃고 친정아버지와 오빠의 잇따른 객사에, 또 뱃속의 아이를 유산하는 불행이 연달아 일어났다.
친정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슬픔을 1천400여 편의 시작(詩作)으로 마음을 달랬다.
삶의 의욕을 잃은 그녀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자신의 처지와 슬픔을 쓴 '곡자(哭子)'라는 시속에 그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새(鸞)는 고운 빛깔의 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그러던 어느 날 마치 붉은 꽃 지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듯 27세 꽃다운 나이로 은하수를 건넜다.
못다 핀 꽃처럼 안타까운 생을 살다간 그 마음이 시속에 들어 있어 지지않는 꽃으로 다가온다.
내가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가 생각난다.
학교 앞 가게에서 돈을 내고 자전거를 빌려 타는 게 유행이었다.
혹여 좁은 길에 사람을 피해 잘못 부딪히기라도 하면 "지지배들이 자전거를 탄다고 난리야" 곱지 않은 시선의 지청구를 들어야했다.
지금은 오토바이는 물론 자동차에 비행기까지 몰고 가는 세상이다.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뛰어난 며느리를 집에서 살림 못한다고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가 있을까?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능력있는 며느리감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엄청난 재주를 가지고 있어도 봉건적 사회제도 속에 갇혀 정신적으로 힘겹게 살다 간, 천재여류시인 400년 전 그녀와의 만남은 내게 또 다른 도전을 준다.
"내가 쓴 시를 모두 태워달라".
유언을 해 안타깝게도 많은 시가 태워졌다.
균은 누이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로 외우고 있던 시와 본가에 남아있던 작품들을 모아 널리 전하고 싶었다.
누이의 열정적인 창작 시들을 보물처럼 간직하다 명나라 사신 주자번(朱之蕃)에게 전했다.
그는 난설헌의 빼어난 시를 보고 매우 경탄하며 '허난설헌 유고집'을 발간했다.
한국사에서 여성최초로 문집을 간행한 그녀의 시는 중국과 일본사람들에게 읽히며 역으로 그 이름이 알려진 조선시대 한류스타로 사후에 이름을 남겼다.
햇살이 가시 돋친 듯 따갑다.
한 생애가 가고 또 한 생애가 온다.
마음을 토해내는 열병 같은 그 무엇을 그녀는 창작 혼으로 불태웠다.
우리는 역사에, 이 땅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이경영 수필가 허난설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