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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부동산 전쟁’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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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부동산 전쟁’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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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안선희│논설위원



이미 작년 12월 중순이었다. 강남에 사는 지인에게서 “요즘 강남 부자들 사이에서는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집값이 또 오를 테니 부동산을 사야 한다’는 말이 돌아다닌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것은. 놀라웠다. 느닷없는 내란사태로 온 국민이 충격과 분노에 사로잡혀 다들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때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향후 정치 일정이 탄핵과 파면, 그리고 정권교체의 순으로 이어질 것으로 ‘냉정하게’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진보 정부=집값 상승’이라는 프레임을 가동하며 또 한번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 발전과 인구 증가, 수도권 집중 등을 배경으로 주기적으로 부동산 광풍이 휘몰아쳤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0년대 중반,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초반이 그런 때였다. 광풍이 한번 불기 시작하면 전 국민이 부동산으로 열병을 앓는다. 일부는 승자의 기쁨을 누리지만, 더 많은 사람은 패배감과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정부는 뭐 하고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정부는 전전긍긍하며 각종 대책을 내놓는다. 한번 상승세를 탄 집값은 쉽게 잡히지 않고 정부는 연신 고개 숙여 사과를 한다. 나라 전체가 부동산의 인질이 되어버린다.



지난 2월 오세훈 서울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시발점으로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내수 부진에 계엄 쇼크까지 겹치자 지난해 10월 이후 한국은행은 네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정부도 경기 부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13조8천억원 규모의 1차 추경이 집행되고 있고, 지난 4일에는 31조8천억원 규모의 2차 추경이 국회를 통과했다. 완화적 통화정책과 확장적 재정정책은 경기하강기 어쩔 수 없는 정책조합이지만, 이는 대출금리 하락과 시중 유동성 증가를 불러오게 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 수 있는 좋은 토양이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 폭이 점점 커지더니 6월 넷째 주에는 2018년 9월 이후 최대치를 보였다.



정부가 6월27일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주택가격과 차주의 소득과 상관없이 6억원 이상의 대출을 금지해버린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그냥 단칼에 베어버린 모양새다. 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발표일로부터 일주일간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64%가 줄었다.



국토연구원이 2011년 1월~2021년 12월 기간을 대상으로 기준금리, 대출 규제, 주택 공급, 인구구조, 경기 등 다섯가지 변수의 주택가격 변동에 대한 기여도를 분석한 결과 기준금리가 60.7%로 가장 높았다. 두번째가 대출 규제(17.9%)였고, 주택 공급(8.5%), 인구구조(8.5%), 경기(4.4)가 그 뒤를 이었다.(이태리·박진백 ‘주택시장과 통화(금융)정책의 영향 관계 분석과 시사점’) 기준금리와 대출의 영향력이 집값에 결정적이라는 의미다.



경기 여건상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는 없는 상황에서 결국 부동산 불안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으로 들어가는 돈줄을 죄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6·27 대책’은 문제의 정곡을 찔렀다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실수요자와 청년들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는 ‘사다리’를 치워버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한 네티즌(베지터001)의 말처럼 “그게 사다린지 썩은 동아줄인지 조금만 생각해도 답이 나”온다. 시장이 투기 열기로 달아오르는 것을 방치하고, 평범한 중산층과 서민이 불안한 마음에 자신의 상환능력을 뛰어넘는 ‘영끌’을 받아 집을 산 뒤 원리금 부담에 평생을 시달리게 만드는 것이 사다리가 아니다. 진정한 사다리는 누구나 자신의 소득에 알맞은 대출을 받아도 적당한 집을 살 수 있도록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한번 고개를 든 집값 상승 기대 심리가 얼마나 끈질긴지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정부는 시장이 확실하게 안정될 때까지 6·27 대책의 기조를 완화해서는 안 된다. ‘시장에 맡겨라’는 섣부른 유혹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막상 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면 ‘정부 책임론’과 ‘정부 무능론’이 득세할 것이다. 시장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되지만, 시장에 우습게 보여서도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장 심리 안정 차원에서 공급 확대 방안도 늦지 않게 제시될 필요가 있다. 부동산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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