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 외교당국, '日 우세' 객관적 정세 판단 실수…"반성 않는 일본 문제지만, 표결 과정·결과 복기해야"
'군함도'로 불리는 일본의 하시마섬.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현 인근에 위치한 소규모 섬이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일본 정부와 기업은 조선인들을 대규모로 강제 징용해 군함도의 해저 탄광 등에서 일하게 했다. 관련 역사 자료에 따르면 약 800명의 조선인이 징용돼 122명이 숨졌다는 기록이 있다. / 사진=뉴스1 |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두고 국제무대에서 초유의 표 대결을 펼침에 따라 이재명 대통령이 공언한 실용외교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을 반성하겠다는 말을 실질적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일차적 문제가 존재하지만, 외교당국이 객관적 정세 판단에 실패해 표결까지 끌고가 일본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오른손은 싸워도 왼손은 잡는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한일관계 원칙이 과거사와 일본에 패했다는 '국민 정서'와 결합돼 타격을 입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의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관련 후속조치 미이행 문제를 위원회가 평가하자'는 취지의 안건을 잠정 의제로 올렸다. 하지만 일본은 위원회가 아닌 양자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라고 반대하며 '수정안'을 제출했고, 한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표결을 요청했다.
위원회는 대부분의 결정을 21개 위원국 간 합의에 따른 '컨센서스' 방식으로 내리지만 한 위원국이라도 합의에 반대하면 표결을 진행한다. 일본은 컨센서스를 요청하는 한국의 교섭에 제대로 응하지 않으며 표결을 대비한 교섭에 더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결 결과 일본의 수정안은 21개 위원국 가운데 찬성 7표, 반대 3표, 기권 8표, 무효 3표로 가결됐다. 이는 일본의 군함도 후속조치를 유네스코 차원에서 다시 평가하자는 한국의 주장보단 한일 양국이 협의해야 한다는 일본의 반박에 더 많은 국가들이 호응했다는 의미다. 사상 초유의 과거사 표 대결 끝에 회의 의제화조차 무산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악수하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현 인근에 위치한 소규모 섬이다. 1940년대 일제강점기 일본 정부와 기업은 조선인들을 대규모로 강제징용해 군함도의 해저 탄광 등에서 일하게 했다. 관련 역사 자료에 따르면 약 800명의 조선인이 끌려가 122명이 숨졌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일본은 2015년 7월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렸다. 사토 쿠니 당시 주유네스코일본대사는 등재 전제 조건으로 "수많은 조선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 강제로 노역한 사실을 (알릴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과거사 반성 조치로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산업유산정보센터 설치와 강제노역 사실도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본은 2020년 군함도와 약 1000㎞ 떨어진 도쿄에 센터를 세웠고, 차별은 없었다는 왜곡된 내용 등만 반영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증언을 전시하고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라는 우리 측의 요구도 번번이 외면했다.
이번 사안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긍정적 흐름을 유지해 온 한일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선 매년 7월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국방백서를 발간하고 있고, 올해 사도광산 추도식이 당초 예정된 7~8월보다 늦어질 것으로 전망돼 과거사·영토 문제 관련 이견이 지속될 수 있다.
한일 양국의 국민 정서가 과거와 같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다면 이재명 정부도 과거사와 미래 협력을 더는 분리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은 "외교·안보 정책의 일관성도 중요하지만 국제사회에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일본에 대해 문제 제기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과거사 문제는 양국의 노력이 필요하고 역사 문제가 한일관계 논의의 장을 과하게 지배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도 "이번 표결 과정과 결과는 외교당국의 철저한 복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의제 채택에 필요한 표가 확보되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정부는 과거사 현안에 대해서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나가면서도 일측과 상호 신뢰 하에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이어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초유의 표 대결을 두고 우리 외교력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국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외교 현장에서 객관적 판단보단 감정적 접근을 앞세워 정세를 잘못 읽었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유네스코에 한국의 3배 규모 분담금을 내고 있고, 한국의 요구를 예상해 표결을 준비했던 점을 고려하면 한국이 보다 치밀하게 표 계산을 하고 안건을 올릴지 여부 등을 결정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조성준 기자 develop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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