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첫 공식 기자회견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나의 첫 언론 기고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있던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 고 박훤구 원장의 요구에 따라 실업 대책에 대한 보수 언론의 공격이 너무 심해져서 썼던 ‘공공근로사업의 두 얼굴’이었다. 다행히 무작정 보낸 글을 한겨레가 실어주었다.
당시의 나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 시기는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의 맹아가 맹렬하게 돋아나던 시기였다. 태풍의 중심부, 즉 눈에 들어가면 상하 대류가 줄어들어 잠시 평온함을 느끼더라도 곧 눈 주변의 폭풍이 덮쳐 큰 피해를 보게 된다. 비정규직은 노동시장의 이등 시민으로 고착됐고, 이를 제어하고자 했던 법은 더 어려운 형편의 노동자를 초단기간 혹은 간접고용으로 내몰았다. 특수고용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기도 전에, 플랫폼 노동 등으로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경계 자체가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 삼중화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시장의 차별은 그 어떤 제도도 피해 더 교묘하게 진화하여, 우리 사회 계급은 공고화되었고 노동의 균열은 분열로 이어졌으며, 사회의 극우화가 본격화되었다.
그래서, 노동자였던 대통령의 선출은 나에겐 깊은 울림을 주는 사건이었다. 현직 노동자인 장관의 임명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역량이 있는 누구나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특별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출신과 포장지를 따지는 봉건적 기득권을 벗어나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파행과 부패와 탄핵의 고통 없이 삼년 전에도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일이 아닌가. 오랜만에 만난 졸업생은, 그럼에도 만족하던 나와는 조금 달랐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힘들 일인가요?”
우리는 특히 노동과 관련하여 ‘이게 그리 힘들 일인가’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수년간 물가상승률이 치솟은 뒤에도 거의 멈춰 있던 최저임금을 조금 올리는 일이, 균열 일터에서 계속 목숨을 잃는 하청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는 일이, 돌봄에 종사하는 고령의 여성 노동자가 그 가치에 걸맞지 못한 저임금과 고용불안, 부당한 대우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일이, 수많은 오분류된 위장된 자영업자에게 빼앗긴 노동권을 돌려주는 일이, 채용부터 차별과 마주해야 하는 여성 등 여러 소수자집단 노동자를 평등하게 처우하는 일이, 고용관계 밖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하는 시민에게 보편적인 육아 돌봄 휴직권을 제공하는 일이, 이게 과연 그리 힘들 일인가.
외환위기로 노동시장에 몰아친 태풍을 제대로 막아내지도 못한 상태에서, 우리는 지금 또 다른 태풍의 눈 속에 들어와 있다. 새 정부가 의욕을 가지고 추진하는 인공지능(AI)의 시대가 열리면, 일자리는 또 어떤 변화와 맞닥뜨려야 할까. 인공지능으로 인한 자동화는 일자리의 양극화를 더욱 확산시키고, 중위층 임금조차 정체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자의 숙련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인간 노동자의 임금에 지속적인 하방 압력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성평등 수준이 낮은 국가의 경우 로봇화는 성별 임금격차를 더 악화시켰다. 현재의 상황이 3차 산업혁명 시기와 다른 점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만들어질 일자리보다 더 빨리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자동화는 단순한 나쁜 일자리만을 대체하지 않는다. 앞으로 많은 노동자가 자동화가 어려운 일자리뿐 아니라 임금이 너무 낮아 자동화할 가치가 없는 일자리를 두고 경쟁할 수도 있다. 이 디스토피아의 불운한 노동자가 돌아볼 곳은 시장이 아니라 국가라는 점을 새 정부가 잊지 않으면 좋겠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2020년, 이른바 ‘조국 사태’의 여진에서부터 윤석열의 부상과 종말, 이재명 정권의 탄생까지, 시작할 때의 예상을 크게 넘기며 이어온 연재를 끝낸다. 그동안 나눈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잠시나마 머물렀기를 바라며, 덕분에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