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가 끝난 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헤이그/로이터 연합뉴스 |
김정섭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요구해온 국방비 증액 요구를 마침내 관철시켰다. 지난 6월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이 2035년까지 국방비 비중을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끌어올리기로 합의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병력과 물자 등 핵심 군사 역량에 3.5%를 투자하고, 나머지 1.5%는 사이버, 인프라 등 광의의 안보 비용에 충당한다는 내용이다. 나토가 기존에 갖고 있던 국방비 지출 기준이 2%라는 점을 고려하면, 금번 5% 상향은 가히 역사적 결정이라 할 만하다. 유럽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대서양 동맹의 파국을 막고 나토 조약 제5조의 집단방위 공약을 재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슷한 압박이 한국에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면담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5% 기준이) 하나의 흐름이고, 유사한 주문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며 이를 확인한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먼저 실현 가능성 측면부터 보면 국방비 5% 지출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2024년 한국 국방비의 지디피 대비 비중은 약 2.33%다. 만약 이를 5%까지 올리려면 정부 전체 예산 중 국방비 비중이 현재의 9.1%에서 19.4%까지 늘어나야 한다. 이론적으로야 정부 의지와 우선순위 조정으로 높일 수 있다고 생각되나, 정부의 지출 구조상 이는 불가능하다. 정부 총지출의 50% 안팎이 인건비, 연금, 국채 이자 등 경직성 경비이고, 나머지 많은 부분도 기초생활보장, 교육비 등 준경직성 경비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안은 균형 재정을 포기하고 국채 발행을 통해 국방비 재원을 마련하는 것인데, 이는 일회성도 아니고 영구적 차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 재정건전성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내용적으로도 나토에 적용했던 5% 기준을 한국에 적용하는 건 부적절하다.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 논쟁은 실은 트럼프 이전부터 거론되던 고질적인 동맹 이슈다. 유럽이 오랜 평화주의 기조하에 국방력 건설에 소홀해왔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50만명의 정예 상비군을 유지하며 현존하는 북한 위협에 대비해오고 있는 전형적인 안보 국가다. 20만명 미만의 상비병력을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과 다르며, 지디피 대비 국방비 비중도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 중 가장 높다. 특히 재래식 군사력 부분에선 한국이 북한을 능가한 지 오래다. 국방비를 5%로 상향해도 이미 우월한 재래식 분야를 추가 보강한다는 점에서 군사력 전반의 증강이 절실한 유럽과는 다르다.
물론 현실적, 내용적 부당함과는 별도로 대응 전략이 있어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건 나토가 고안해낸 것처럼 방위산업 육성, 국가 연구개발 등을 묶어 범안보 비용 투자로 인정받음으로써 국방비 증액 압박을 완화하는 방안이다. 동맹의 파열을 막는 일종의 궁여지책이다. 그러나 정공법은 형식적인 국방비 숫자가 아니라 한·미가 합의할 수 있는 진정한 소요에 기반하여 한국의 방위 역량을 강화시켜나가는 방법이다. 5%든 3.5%든 목표를 정해놓고 10년간 이행계획을 세우는 건 본말이 전도된 접근이다. 이래서는 우리 군의 전력 증강 로드맵과 조화되기 어렵다. 빠른 외국 무기 구매에 의존함으로써 국내 방산 기반이 약해질 우려가 있고, 드론 등 미래전에 요구되는 전력보다 당장 양산이 가능한 전통적 무기체계에 돈이 쓰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소요에 기반하여 전략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렇게 해야 한반도 방위의 한국화를 이루고 미국의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무릇 정부 지출의 우선순위 설정은 주권 국가의 당연한 권리이자 책무다. 동맹국의 요구라 할지라도 한반도 안보의 특성을 강조하며 최대한 재정적 자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앤서니 앨버니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는 미국의 요청에 대해 국방비는 숫자가 아닌 필요 역량에 따라 주권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도 “처음부터 몇퍼센트라는 식의 조잡한 논의를 할 생각이 없다”며, 예정된 미-일 외교·국방장관 회담까지 취소하는 등 강경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요구에 유연하게 반응했던 나토의 사례를 참고하되, 아시아 동맹에 부합하는, 국익 중심의 실용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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