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4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부산시 유세에서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등의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민경태 | 국립통일교육원 교수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북극항로 개척과 동해선 철도 연결, 나아가 남북협력의 미래 구상까지 포괄하는 통합적 비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로 북극 해빙이 가속화하면서 북극항로의 실용화 가능성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 기존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운송거리를 30% 이상 줄일 수 있고, 물류비 절감 효과도 크다. 러시아는 원자력 쇄빙선 보유를 확대하며 북극항로 주도권 확보에 나섰고, 중국은 북극항로를 포함한 ‘빙상 실크로드’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수부를 부산에 상주시켜 항만 인프라와 해양정책을 긴밀히 연계하려는 이번 조치는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결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해양 전략은 육상 네트워크와 연결할 때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지난 1월, 부산-강릉 간 동해선 전 구간이 개통하며 부산은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국가 철도망의 출발점이 되었다. 정부는 내년부터 고속열차를 투입해 이 구간의 소요시간을 3시간 이내로 단축할 계획이다. 북쪽으로 연장될 강릉-제진 구간은 2029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 철도가 북한 원산과 나선을 지나 러시아·중국의 대륙횡단철도와 연결된다면, 부산은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교통·물류의 핵심 관문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 전략 구상을 한반도 평화협력으로 확장할 핵심 접점이 바로 북한 원산이다.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챙겨온 대규모 사업으로, 지난달 24일 준공식을 통해 개장을 공식화했다. 이 단지는 객실 약 2만개, 콘도 27동, 워터파크, 원형극장 등을 갖춘 북한 최대 관광개발 사업으로, 과거 금강산 관광지구의 30배 규모에 달한다. 하지만 대북 제재와 항공편 제약 등으로 중국·러시아를 제외한 해외 관광객 유치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전략적 개입 여지가 생긴다. 관광은 유엔의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원산 관광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 실용 외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자국민의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부분 완화한다면, 전면적인 제재 해제 없이도 북미 간 협력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 일본 역시 납북자 문제와 전후 배상 문제를 풀기 위한 접점을 관광 교류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논의했던 원산-니가타 간 연락선 복원은 양국 간 신뢰 회복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여기에 한국이 참여하는 남북 관광협력 구상이 더해진다면, 단절된 남북관계를 다시 잇는 실용적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국제질서와 대북 정세 모두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란 핵 협상 문제, 북·중·러 밀착 등이 동시에 진행하며 한반도를 둘러싼 역학 구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한국은 수동적 관찰자가 아닌, 능동적 전략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해양, 철도, 관광이라는 현실적 협력 의제를 통해 다자 틀 속에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도하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부산은 이제 대륙과 단절된 한반도 남단의 항구 도시라는 인식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관문이자 동북아 평화 구상의 전진기지로 도약할 수 있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은 바로 이러한 복합 전략의 실행 기반이자 물리적 출발점이다. 해수부를 비롯해 통일부, 외교부, 국토교통부가 긴밀히 협력해 북극항로, 동해선, 원산 관광 협력을 아우르는 포괄적 정책 구상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부산이 동북아 평화 번영의 연결고리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전략적 플랫폼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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