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주최한 방송3법 개정 관련 긴급 토론회가 1일 오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장에서 열리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방송 3법’이 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했다. 정치권이 법적 근거도 없이 관행적으로 행사해온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미디어 관련 학회와 각 방송사 시청자위원회 등으로 분산시켜 정치권력이 방송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없도록 한 것이 법안의 뼈대다.
이 법이 제대로 시행되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여야가 공수를 교대해가며 벌여온 볼썽사나운 ‘공영방송 쟁탈전’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명박 정부 이래, 정권이 바뀌기만 하면 집권세력이 이전 정부가 임명한 이사들을 온갖 꼬투리를 잡아 찍어내고 그 자리에 친정권 인사를 내리꽂는 일이 반복돼왔다. 한국방송(KBS) 등 공영방송 이사회를 여권 우위로 재편해 사장 등 경영진을 갈아치우기 위해서다. 그 종착점이 ‘정권 나팔수 방송’ 만들기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 의미 있는 것은 법안 처리를 주도한 쪽이 여당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정치권이 너 나 할 것 없이 야당일 때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강하게 요구하다 정권만 잡으면 입 싹 씻고 ‘전리품’ 챙기기에 바빴던 걸 생각하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전향적인 태도 변화임이 틀림없다. 과반수를 훌쩍 넘는 여당이 입법 드라이브를 걸고 있으니, 윤석열 정부 시절 두차례나 거부권에 막혔던 방송 3법은 조만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방송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전환점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짚고 넘어갈 부분도 없지 않다. 우선, 공영방송 이사 중 국회 추천 몫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 있다. 이번 민주당의 법안은 한국방송 이사회는 15명 중 6명을,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는 13명 중 5명을 국회가 추천하도록 하고 있다. 그 비율이 각각 40%, 38%에 이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애초 민주당 법안(21명 중 5명)보다 훨씬 국회 추천 비중이 크다.
물론 정치권이 여야 7 대 4(한국방송), 6 대 3(방문진)의 비율로 암암리에 ‘자기 사람’을 이사회에 밀어 넣는 기존 방식과 견주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에 큰 진전을 이룬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권 이사’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이사회가 정파적 대결의 장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타파하겠다는 방송 3법의 취지를 온전히 살리기도 어렵다.
공영방송 이사 4명을 추천할 미디어 관련 학회와 변호사단체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규칙으로 정하게 한 점도 우려스럽다. 사실상 방통위에 추천 단체 선정 권한을 준 셈인데, 정권의 의중에 따라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방송심의의 흑역사를 남긴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시절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위원 추천 단체 선정 권한이 오남용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법안에 단체의 활동 기간 등을 고려하라고 규정했다고는 하나, 하위 법령으로 모법의 취지를 왜곡하고 무력화한 일은 그동안 무수히 있어왔다. 방통위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개혁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추후 방송 장악 의도를 가진 정권이 들어서면 방통위 손에 ‘친정권 이사’ 추천권을 쥐여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시민사회의 관심이 이사 추천권에 쏠려 있지만, 방송 노동자 처지에서 지배구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보도·제작·편성 등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적 자율성’ 확보다. 이런 점에서 방송 3법에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설치 의무화, 편성규약 위반 시 처벌,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등의 조항을 신설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에스비에스(SBS) 등 민영 지상파 방송사와 종편을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는 ‘공영방송 이사 및 사장의 자격요건 강화’ ‘공영방송 임원의 직무상 독립과 정치 중립 의무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방송 3법에는 이런 내용이 빠져 있다.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정치 낭인’들이 공영방송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려면 이런 내용도 법에 담을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제도를 설계할 때는 늘 악용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할지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현재 방송 3법 개정 움직임은 방향은 잘 잡았지만 속도가 너무 빠른 감이 없지 않다. 본회의 의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므로 학계와 언론단체 등에서 제기하는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보완해갔으면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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