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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시각] 손실 보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본시장은 곤란하다

조선비즈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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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시각] 손실 보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본시장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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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옵티머스 사태에 대해 의견 내는 건 조심스럽다. 피해자가 많아서다. 해당 운용사들은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구조를 짜고, 부실기업에 투자하고, 자금을 돌려막으며 투자자를 기만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자본시장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자 애쓰는 건 당시 사태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준다.

다만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은 있다. 금융당국이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며 판매사에 투자금 100%를 배상하도록 한 점이다. 자본시장에서 투자자 책임이 ‘제로’일 수 있다니. 큰돈 날린 서민들이 구제받은 건 다행이지만, 100 대 0의 책임 비율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일단 훼손되기 시작하면 시장은 손실 보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투자자 책임 0%란 전례가 독일 국채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배상 논의에 영향을 안 미쳤을까. 금융감독원 앞마당 시위 규모와 강도부터 달라졌다. 집회마다 등장하는 ‘보상 여론 조성’ 전문가도 활개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금융위원회의 금융 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금융감독원의 소비자 보호 업무를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가칭)을 신설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한다. 현재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이 작업을 주도하는 인물이 5년 전 사상 초유의 투자자 책임 0% 결정을 이끌어낸 김은경 교수(당시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다.

금융소비자 보호의 당위를 부정할 이는 없다. 사기성 상품 구성과 설명 부실, 리스크 은폐에 대해선 더욱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 다만 이것이 개인 투자 판단의 결과를 공공이 흡수해 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과 연결돼선 안 된다.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쉽게 무너지는 자본시장에서 어떤 기관이 활동하고 싶겠는가.

이재명 정부가 금소원을 반드시 신설해야 한다면, 그 조직은 금융소비자의 울타리 역할에만 그쳐선 안 된다. 투자자의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돕는 지원자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자에게 자기 판단에 따른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심어줄 균형감을 기대해 본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훗날 “윗분들 자리 하나 더 만든 작업” 정도로 평가받을 것이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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