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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받을 자격’을 묻는 사회, 누가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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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받을 자격’을 묻는 사회, 누가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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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제21대 대선이 끝나고 한 달 동안 가장 활발했던 담론은 2030 남성들의 극우화 논란이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지지율을 합치면, 20대 남성에선 74.1%, 30대 남성에선 60.3%가 나왔기 때문이다. 12·3 내란과 극단적 성폭력 발언이 있었음에도 두 후보가 이만큼이나 지지받은 게 놀랍다는 반응이 이 논란의 기저에 깔렸다. 이후 여러 매체에서 여론조사 결과까지 묶어 2030 남성의 ‘극우화는 명백하다’거나 ‘극우화는 아니지만 보수화는 뚜렷하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자 다양한 데이터를 근거로 ‘2030 남성 극우화 규정은 낙인찍기가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한겨레21은 이 담론에 공백이 있다고 여겼다. 우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 수치와 실제 투표 결과 사이에 괴리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거대 양당이 승자독식 선거제도에 기대 표심을 흡수하는 한국의 정치체제에서 투표만으로 시민의 다양한 정치 성향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에 한겨레21은 2030 당사자에게 직접 지지 이유를 들어보기로 했다. 특히 두 후보 중에서 이준석을 지지한 2030 청년 13명(여성 2, 남성 11)을 심층 인터뷰했다. 2030 극우화 담론에서 이준석은 상징적 정치인이고, 세대적으로도 가장 가깝다. 물론 이 심층 인터뷰 역시 세대적·계층적·지역적 대표성에서 한계가 있다.



분석 결과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건 2030 청년들의 강한 불안이었다. 그 불안은 대체로 두 가지에서 비롯했다. 하나는 추락에 대한 공포다. 이들은 자산과 소득에서 최소 중산층에 속했음에도 언제 추락할지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상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능력주의다. 이들은 개인의 능력이나 업적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자원, 보상을 분배해야 하고, 실패의 책임도 개인이 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내가 손해 보더라도 다 같이 잘 사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30대 남성의 말이 대표적이다.



이 두 가지가 극적으로 나타나는 게 연금개혁에 대한 불만이다. 13명은 공히 연금개혁에 대한 불만을 언급했는데, 이 불만에는 연금제도를 세대 간 공적 부조가 아니라 기성세대와 노인층의 무임승차로 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국민연금이 출산크레딧과 실업크레딧 등 연금크레딧, 저임금 노동자 보험료 보조와 같이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공적 지원을 수행한다는 사실도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 추락에 대한 공포가 두렵다면 국민연금의 이런 공공성은 앞장서서 지켜야 하는 것 아닐까.



이들은 성장보다 분배의 관점에 무게를 두고 이야기하면서도 모두가 함께 사는 분배가 아니라 나까지만 포함하는 분배를 말하기도 했다. 분배받는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능력과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2030 청년들의 이런 인식 체계는 사회구조적 산물이다. “30대 이하는 공동체적 가치가 해체된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다. 사회나 직장이 보호막이 돼줄 수 없다는 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는 말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2030 남성의 극우화를 말하기 전에 보호막 없는 각자도생 사회, 능력주의에 기반해 ‘분배받을 자격’을 묻는 사회를 만들어놓은 기성세대부터 비판받아야 하는 까닭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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