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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미국 텍사스주 커빌 인근 과달루페강이 범람한 모습을 상공에서 찍은 모습. UPI 연합뉴스 |
4일(현지시각) 새벽 미국 텍사스주 중부에 퍼부은 폭우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6일 미국 언론을 통해 하나둘씩 전해지고 있다.
4일(현지시각) 새벽 3시 반, 지붕을 내려치는 빗소리와 천둥·번개에 알제이 하버(45)는 잠에서 깼다. 평생 텍사스주 헌트 인근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온 그는 강물이 불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래쪽 캐빈에 묵고 있는 두 딸(11살, 13살)을 들여다볼 요량으로 일어났다. 하버 부부는 자신 소유의 캐빈에, 두 딸과 부모님은 강에 좀 더 가까운 캐빈을 빌려 묵고 있었다.
바닥에는 이미 물이 흥건했고 문틈으로 물이 드는 게 보였다. 아내를 깨워 창문으로 빠져나간 지 2분 만에 물은 아내 목까지 차올랐다고 했다. 딸들이 있는 캐빈은 불과 3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강한 물살에 다다르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버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시각은 새벽 3시45분께. 휴대폰을 보니 3시30분에 작은딸한테서 “사랑해요”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아내도 같은 시각 두 딸로부터 같은 문자를 받았다. 아이들은 미시간에 사는 외할아버지에게도 “사랑해요”라는 문자와 함께 그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냈다.
동이 트고 하버는 딸들이 있던 캐빈이 통째로 떠내려간 사실을 확인했다. 아이들의 시체는 20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부모님의 행방은 이날 오후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이 6일 전한 하버 가족 이야기는 텍사스 폭우 참사의 한 조각이다.
트레일러 홈(이동식 차량 주택)을 빠르게 삼키는 물을 마주하고 약혼자와 두 아이, 어머니를 탈출시키려 차창을 손으로 깨부순 줄리언 라이언(27)의 마지막 말도 “사랑해요”였다. 라이언의 마지막 결정은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을 살렸다. 그러나 창을 깨다 동맥이 끊어진 라이언은 응답이 없는 구급대를 기다리다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그는 과다출혈로 숨졌다.
뉴욕타임스는 독립기념일을 맞아 과달루페강으로 가족 캠핑에 나섰다가 여섯 중 다섯이 실종된 헤일리 차바리아(28)의 기다림도 보도했다. 그는 어머니 부부와 이모 부부 그리고 사촌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이들과 함께 있던 사촌 데빈 스미스(22)만 살아돌아왔다. 4일 새벽 4시부터 오전 10시까지 그는 댐 3곳을 지나 24km 이상 하류로 떠내려가다가 필사적으로 나무에 매달려 구조됐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상처투성이인 그는 입원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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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폭우로 홍수가 발생한 미국 텍사스주 헌트 과달루페강에서 구조대가 생존자 수색을 하는 가운데 강물에 떠내려온 차들의 모습이 보인다. AFP 연합뉴스 |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이도 있다. 가족을 구하다 숨진 줄리언 라이언의 이웃이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이 매체는 로살리 카스트로(60)로부터 과달루페강 인근 트레일러 홈에 사는 조카는 개들이 짖는 바람에 깨 도망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우리는 어떤 경고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홍수가 잦은 이 지역에 피해가 컸던 데는 여름캠프로 ‘캠프 미스틱’ 등 시설을 찾은 어린이·청소년뿐 아니라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를 즐기기 위해 야영장을 찾은 가족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강 옆 트레일러 홈 단지도 홍수에 휩쓸려갔다. 문제는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대부분 홍수 경고를 받지 못했거나 너무 늦게 받아 피해를 키웠다고 미국 언론은 지적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연방 비상관리기관의 통합 공공경보 및 경고 시스템을 전하는 공공데이터베이스의 데이터를 검토한 결과 피해가 가장 컸던 커 카운티의 경우 6일까지 위험을 알리는 경고 푸시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커 카운티에서는 이날 밤까지 68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매체는 그때까지 대부분 경고 알림은 국립기상청 오스틴/샌안토니오 관측소에서 발신된 것이었으며, 일부는 새벽에서야 수신이 불안정한 지역까지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홍수가 오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게 4일 기자회견에서 커 카운티의 롭 켈리 판사가 캠프 미스틱을 포함해 이 지역 사람들을 대피시키지 않은 이유를 묻는 말에 한 답이었다.
시엔엔에 따르면 6일 밤까지 4일 폭우로 어린이 28명을 포함해 최소 82명이 숨지고 40여명이 실종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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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미국 텍사스주 헌트에서 수색 구조대가 생존자를 찾는 가운데 4일 폭우로 이한 과달루페강의 거센 물살에 뿌리가 뽑힌 나무가 기울어져 있다. AFP 연합뉴스 |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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