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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뱅크로 경제 살린다?… 해외 연구 모아보니 ‘글쎄’

조선비즈 김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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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뱅크로 경제 살린다?… 해외 연구 모아보니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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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상무부, 희토류 및 관련 기술 수출통제 조치 발표
그래픽=정서희

그래픽=정서희



추가경정예산 확정으로 배드뱅크 설립이 본궤도에 오르자 금융위원회가 배드뱅크의 경제 부양 효과 홍보에 나섰다. 금융위는 해외 연구를 근거로 내세워 배드뱅크의 기대 효과를 설명했지만, 정작 배드뱅크의 역효과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여럿 발견된다. 나라마다 경제 환경이 다른 점을 고려하면 단편적인 해외 연구 사례를 정책 기대 효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4일 국회의 추경 의결 직후 배드뱅크 취지 설명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금융위는 이 보도자료를 통해 “해외 연구도 채무조정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다수 확인했다”며 “경제적 성과가 장기간 지속되고 사회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고 밝혔다. 금융위가 인용한 해외 연구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독일 뮌헨대 경제연구소(CESifo) 등에 실린 보고서 4개다. 개인 빚 감면 정책으로 채무자 재기를 돕고, 거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그러나 해외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개인 채무조정에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채무조정이 원래 의도한 대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송 한 이코노미스트, 겅 리 이코노미스트가 2009년 발표한 워킹페이퍼(중간보고서)는 파산으로 빚을 탕감받은 가구와 파산을 경험하지 않은 가구의 자산 격차가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된다고 짚었다.

그래픽=정서희

그래픽=정서희



파산을 겪은 가구와 파산을 신청하지 않은 가구의 연 소득이 같다고 가정했을 때, 파산 2~5년 사이 두 집단의 자산 격차는 연 소득의 77% 수준으로 집계된다. 파산 후 10년 이상 지났을 때, 두 가구의 자산 격차는 연 소득의 93%로 벌어진다. 연구진은 “많은 파산 가구가 빚을 없애도 ‘새출발(fresh start)’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고용 측면에서 채무조정의 역기능을 발견한 연구 결과도 있다. 올해 2월 발표된 마이클 디너스테인 NBER 연구원의 보고서는 미국 행정부가 2022년 4300만명의 학자금 대출을 탕감한 후 채무자들의 소득, 고용, 소비 현황을 추적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감면 이후 채무 탕감자들의 월평균 소득은 2.3% 감소했고, 고용률은 0.4% 줄어들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채무조정 후) 시간이 지날수록 노동 감소 효과가 커졌다”며 “부채를 상환할 필요성이 줄면서 소득 확보 유인이 낮아진 전형적인 ‘부의 효과(wealth effect)’”라고 해석했다. 이 외에도 여러 연구가 대규모 채무조정의 역효과로 국가 재정 부담 가중을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해외 연구 결과를 섣불리 국내 기대 효과에 대입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김현열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별로 경제 규모 및 경제 구조가 달라 외국에 비슷한 유형의 채무조정이 있더라도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태호 기자(t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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