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은 소리꾼 이희문(가운데)이 지난 4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개막 공연에서 노래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
“굽이치는 거센 물결에 갈매기 두둥 떠 놀고/ 님 찾아 갈 길이 망연지사로다~”
황해 민요 ‘긴난봉’을 부르는 간드러진 목소리의 주인공은 분명히 소리꾼 이희문인데, 분홍 의상에 하이힐을 신고 무대에 등장한 인물은 드래그퀸 나나영롱킴이다. 지난 4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요상한 민요 나라 히무니’란 이름으로 열린 공연이었다.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는 기치를 내걸고 시작해 올해 16회째를 맞은 ‘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 이희문이 열어젖힌 개막 공연이었다. 가수 민해경과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아이비, 힙합 그룹 마이티 마우스 등이 출연했다.
지난 4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열린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 개막 공연 첫 출연자로 나선 드래그 공연예술가 나나영롱킴. 국립극장 제공 |
독창성을 무기로 국악의 변신을 주도해온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이수자 이희문이 올해 축제의 열쇳말로 ‘민요의 재발견’을 선택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기악, 성악, 연희 등 여러 갈래의 전통음악을 망라해 뷔페처럼 차려놓던 기존 여우락과 달리 올해엔 오로지 민요란 단일 메뉴에 집중한다. 대중음악, 재즈, 록, 클래식, 현대무용, 힙합, 드래그 등 다른 장르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변형하는 민요 잔칫상은 어느 해보다 풍성해 보인다. 오는 26일까지 12개 작품, 16차례 공연이 이어지는데, 역대 최대인 200여명이 출연한다다.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민요잖아요.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요상하게 해보자는 생각에 ‘요상한 민요 나라’로 해봤어요.” 이희문이 최근 간담회에서 설명한 기획 취지다. 공연은 수호자, 마법사, 연금술사란 세가지 범주로 나뉜다. ‘수호자’가 민요의 본질과 전통을 지켜온 민요 명인과 소리꾼들의 무대라면. ‘마법사’에선 새롭게 재해석된 민요를 선보이며, ‘연금술사’는 민요와 다른 장르가 뒤섞인 실험과 파격의 무대다.
여우락 페스티벌에 출연한 가수 최백호가 지난 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청춘가’ 공연에서 노래하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
특히 ‘마법사’로 명명한 무대엔 최백호, 인순이 등 낯익은 가수들이 출연해 눈길을 끈다. 지난 6일 열린 공연 ‘청춘가’는 툭 던지듯 나지막이 노래하는 최백호와 월드뮤직 그룹 공명의 리더이자 작곡가 박승원의 장점을 잘 비벼낸 무대였다. 인순이와 서도소리 전승교육사인 유지숙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이 공개방송 형식으로 진행하는 ‘두 사랑 이야기’(9~10일)는 다른 창법과 감성을 지닌 두 목소리가 만나는 자리다. 인순이는 최근 간담회에서 “경기소리, 남도소리와 비슷하다 싶어 흔쾌히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들어보니 서도소리는 제가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며 “박자는 빠른데 소리는 깊어서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재즈 가수 웅산과 거문고 연주자이자 작곡가 이재하가 서로 다른 음악 언어를 하나의 선법으로 빚어내는 무대 ‘모드’(17~18일)도 눈에 띈다. 웅산은 “재즈와 국악이 만나면 시너지를 내고 천하무적 같은 음악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전통 성악의 두 갈래인 민요와 정가의 만남도 있다. 정가 가객 강권순이 작곡가 신원영과 짝을 이룬 ‘노래가 그래요’(11일)란 무대다. 강권순은 “이 시대의 가요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다”며 “정가를 이 정도로 해체한 적은 지금껏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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