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펨코리아 화면 갈무리 |
‘펨코는 근데 왜 이준석 좋아함?’ 2025년 5월26일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 ‘펨코’(에펨코리아)에 한 이용자가 질문을 던졌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을 절대 지지해온 펨코 이용자들로선 당연한 명제였지만 꽤 많은 댓글이 달렸다. “맞말하니까” “상식선에서 말을 하니까”라는 추상적인 애정 표현부터, “20대 남자들 가려운 부분을 잘 긁어줘서” “퍼주기식 공약 없이 미래 세대 생각해주는 건 이준석뿐이라서”와 같이 이 의원이 청년, 특히 2030 남성들의 정치 성향에 잘 와닿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이준석 같은 애들만 모여 있잖아. 무지성으로 남 내려쳐서 이겼다고 좋아하는 애들 집단 모여 있는 곳이라 동병상련의 느낌이랄까. 펨코의 이준석 사랑은 그만큼 깊어”라는 자조적인 댓글이었다.
이 대화에서 이 의원의 주요 정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이 의원이 기성세대, 거대 양당 정치에 대한 반감을 자극해왔고, 여기에 더해 장애인과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자극하는 반다원주의적 형태의 정치를 보여온 것이다.
“더 배제된 자들에 대한 혐오로 배제된 자 동원”
이러한 이 의원의 정치를 ‘극우’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보다 앞서 ‘포퓰리즘’ 차원에서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한겨레21에 “이 의원의 경우는 ‘우익 포퓰리즘’이다. 명백한 극우 정치 세력보다 확장성이 엄청나게 더 크다”고 봤다. 김만권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도 2021년 ‘황해문화’에 기고한 글(‘우파 포퓰리즘’의 부상으로서 ‘이준석 현상’)에서 “이준석 열풍이 대한민국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부상하고 있는, 배제된 자들을 더욱 배제된 자들에 대한 혐오를 통해 동원하는 당대 우파 포퓰리즘 현상의 첫 부상”이라고 봤다.
포퓰리즘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여러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포퓰리스트들은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서 ‘적’(Feind)과 ‘동지’(Freund)를 구분해내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전제로 한다는 카를 슈미트의 이론을 차용하고 있다. 특히 우파 포퓰리즘은 소수의 엘리트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제3의 외집단을 설정하고, ‘평범한 우리'보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린다고 선동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 의원의 정치 역시 장애인과 여성 등을 ‘외집단'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우파 포퓰리즘이라고 볼 수 있다고 김만권 교수는 분석했다.
![]() |
‘우파 포퓰리즘’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가 2025년 6월20일 이탈리아 로마 빌라 도리아 팜필리에서 열린 ‘아프리카를 위한 마테이 플랜과 글로벌 게이트웨이: 아프리카 대륙과의 공동 노력’ 정상회의 종료 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아프리카연합위원회(AUC) 의장 마흐무드 알리 유수프와 함께 공동 성명을 발표하며 연설하고 있다. REUTERS |
대표적인 우파 포퓰리즘 사례로 꼽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류 언론, 월스트리트와 기존 워싱턴 엘리트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청한 것처럼 이 의원도 스스로 거대 양당을 비판하고 기성세대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인다. 트럼프가 이민자와 외국 자본을 ‘외집단’으로 구분해 적대시하는 것처럼 이 의원은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
다만 이 의원이 차별화되는 지점도 있다. 바로 ‘능력주의’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서구사회에서는 우파 포퓰리즘이 능력주의에 대한 반대에서 비롯됐지만, 이 의원은 “(중학생 시절) 오직 공부로 서열이 매겨진 무한 경쟁”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인터뷰집 ‘공정한 경쟁’)이라고 말하는 정치권의 대표적인 능력주의자다. 김 교수는 “지금 우리 젊은 세대가 능력주의에 경도돼 있기 때문에 능력주의라는 요소를 차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기 아주 좋은 요소”라고 분석했다.
개혁신당=이준석당=펨코당
이런 이 의원의 우파 포퓰리즘 논리는 펨코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랐다. 펨코가 이 의원을 지지하기 시작한 건 2021년 이 의원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로 보인다. 한겨레21이 생성형 인공지능(AI) ‘챗지피티’와 ‘퍼플렉시티’를 이용해 펨코에서 언급된 이 의원에 대한 여론 추이를 분석해보니, 펨코에서 ‘이준석’ 등 키워드가 들어간 게시물이 2021년 1~4월 월 10건 내외였으나, 같은 해 5월20일 이 의원이 공식적으로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자 5월 64건, 당선이 확정된 6월에는 824건까지 급증했다. 2021년 초만 해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젊은 남성 정치인이 기성 정치권에 도전하고 결국 최초의 30대 제1야당 대표에 당선되자 펨코 여론은 자신들과 이 의원을 동일시하면서 ‘2030 남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정치인이 나타났다’고 보기 시작했다.
펨코의 무조건적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대목은 2025년 5월27일 제21대 대선 3차 토론회에서였다. 이 의원이 극단적 성폭력 발언을 내뱉어 대부분의 진영과 언론에서 큰 비판을 받았지만, 펨코만은 달랐다. 상당수 이용자는 “과민 반응”이라며 그를 옹호하거나 오히려 “사이다 발언”이라고 치켜세웠다. 일부 비판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막말로 중도층 표심만 잃었다”는 등의 ‘전략적으로 손해’라는 취지의 비판이 절대다수였다.
이 의원은 펨코 여론을 수시로 체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가까이서 본 전 개혁신당 관계자들은 “이 의원이 펨코 여론을 하루에 12번도 더 보는 것 같다”(김용남 전 개혁신당 정책위의장)거나 “개혁신당은 ‘이준석당’이고 이준석당은 곧 ‘펨코당’”(조대원 전 개혁신당 최고위원)이라고 전했다. 이 의원은 펨코의 무조건적 지지를 받고, 이 의원의 극렬 지지층은 다시 펨코로 모이고, 이 의원은 펨코의 여론을 참고해 정치를 펼치면서, 혐오·능력주의를 바탕으로 한 우파 포퓰리즘의 논리가 강화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개혁신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한겨레21에 “이 의원은 현재 정치에 가장 부합하는 게 ‘팬덤 정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펨코는 그만두지 못한다. 펨코가 자신의 팬덤이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교육을 받았지만 옛날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로 지지층을 확실히 닦아놓고 나중에 확장한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이 의원은 ‘펨코 밖’으로도 외연을 넓히고 있다. 신 교수는 “지금 청년 세대의 불안이 크고, 이 의원은 그 불안에 관해 이야기해주는 유일한 후보”라며 “여성 혐오나 반페미니즘에 동조하지 않아도 이 의원을 뽑는 사람이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은 될 것이다. 유럽 우익 정당들이 사회의 메인스트림으로 돼가는 전형적인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능력주의는 사회문제의 해결책일 수 없다
혐오에 토대를 둔 우파 포퓰리즘의 폐해는 명확하다. 정동준 인하대 교수(사회교육학)는 2023년 ‘현대정치연구’에 기고한 논문에서 “우파 포퓰리즘이 보다 큰 세력으로 성장할 경우 반다원주의와의 연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만권 교수도 “문화적 현상으로서 이준석의 포퓰리즘이 딛고 있는 토대가 혐오라는 점에 관대해져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 아렌트가 지적하듯이, 그 혐오가 일상에서 외로워진 사람들을 동원하는 데 쓰인다면 더더욱 정치적으로 주의해야만 한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또한 “더 심각한 문제는 이준석 현상이 서구에서는 보기 힘든 공정성으로 포장된 능력주의를 사회문제의 해결책으로 동원한다는 점”이라며 “기껏해야 사회의 8%를 위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여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새로운 정치의 토대가 ‘혐오’와 ‘능력주의’라는 사실에 눈감는다면, 그 어디에 새로운 것이 있다는 것인지 스스로 물어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한겨레21 뉴스레터 <썸싱21> 구독하기
<한겨레21>과 동행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네이버 채널 구독하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