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시즌 뒤 SSG로부터 방출돼 야구 인생의 기로에 놓인 고종욱은 테스트 끝에 2022년 KIA와 계약하며 현역을 이어 갈 수 있었다. 2022년 62경기에서 타율 0.283을 기록하며 녹슬지 않은 타격 능력을 과시했고, 2023년에는 114경기에 나가 타율 0.296으로 팀 타선에 힘을 보탰다. 주로 우완 상대 선발, 혹은 경기 중·후반 대타로 나가 쏠쏠한 활약을 했다. ‘대타의 신’이라는 호평까지 받았다.
하지만 정작 FA 계약을 한 뒤 쓰임새가 적어졌다. 분명 필요해서 FA 계약을 했을 것인데, KIA의 우선 순위에서 계속 밀렸다. KIA의 외야 선수층이 더 강해진 것은 물론, 비슷한 쓰임새의 서건창이 합류한 것도 영향이 있었다. 서건창과 고종욱은 포지션이 다르지만 타석에서의 임무는 비슷했다. 두 선수를 모두 벤치에 앉혀둘 수는 없었던 가운데 KIA는 내야 쪽이 조금 더 불안한 상황이었고, 결국 서건창을 더 활용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그리고 서건창이 좋은 활약을 하면서 고종욱의 자리가 사라졌다.
고종욱은 지난해 28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리고 그 28경기에서 얻은 36번의 타석 기회에서 물줄기를 바꿔 놓을 만한 활약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전년보다 OPS(출루율+장타율)는 더 좋아졌지만, 한창 잘 맞고 있었던 KIA에서 어필할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동기부여가 떨어진 탓인지 2군에서도 고전했다. 그 흐름은 올 시즌 중반까지 이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시즌 뒤 방출이 되어도 할 말이 없는 바닥이었다. 고종욱도 야구를 그만두는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그런데 여기서 기막힌 반전이 일어났다. KIA 주축 타자들의 줄부상, 그리고 서건창 이우성 등 기존 선수들의 부진으로 KIA가 선수를 보는 ‘평가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팀 타선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KIA는 일단 찬스 때 ‘칠 수 있는 타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고종욱이 심기일전해 퓨처스리그에서 고공 행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상황이 극적으로 잘 맞았고, 그 다음 스토리는 모두가 아는 대로 양쪽 모두 행복하게 진행되고 있다.
고종욱은 여전히 볼넷보다는 쳐서 나가는 타자다. 스타일이 바뀐 게 아니다. 하지만 잔뜩 오른 방망이 감각이 찬스 때의 집중력을 타고 올라서며 대활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7일까지 시즌 20경기에서 타율 0.391, 2홈런, 9타점, OPS 0.985의 맹타로 KIA의 6월 대반격을 이끌었다. 처음에는 우완 상대로 출전하다, 그 다음에는 주전으로 뛰다, 최근에는 리드오프까지 올라왔다. 고종욱은 고종욱의 방식대로 투수들을 요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고종욱이라는 경험 많은 타자가 등장했고, 클러치 히터의 몫을 해주면서 KIA를 가로막았던 댐의 수문이 열렸다. 이범호 KIA 감독도 적어도 지금의 상황이라면 최형우 못지않은 타격 감각이라고 칭찬할 정도다. 선수마다 제각기 다 다른 쓰임새가 있고, 팀이 그 쓰임새의 선수를 찾고 있을 때 고종욱이 등장했다. 이게 베테랑의 힘이고, 또 선수층의 힘이자, 적절한 자원 배치가 가져다주는 시너지다. 힘들어 야구를 그만뒀다면 KIA는 큰일이 날 뻔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