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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한강 개발로 해운대 700배 백사장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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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 한강 개발로 해운대 700배 백사장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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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일 서울 성동구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김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규원 선임기자

7월2일 서울 성동구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김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규원 선임기자


“한강의 물은 수정처럼 맑았고, 그 부서지는 물방울 조각들은 티베트의 하늘처럼 푸른 하늘로부터 내리는 햇살에 반짝거렸다. (…) 무엇보다는 한강은 ‘금빛 모래의 강’이다”



1894년 4월 작은 배를 타고 한강을 여행한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강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러나 130년이 지난 지금 서울 한강에서 이런 모습은 찾아보긴 거의 불가능하다. 그동안 한강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강이 과거의 아름다움과 건강함을 잃은 현대사와 그 원인을 밝힌 책 ‘한강, 1968’의 지은이 김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만났다. 지난 2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사무실에서였다. 김 연구위원은 이날 이곳에서 북토크를 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강 개발의 신호탄은 1967년 12월27일 기공된 여의도 윤중제(둘레둑) 공사였다. 그런데 김 연구위원은 책 이름을 ‘한강, 1968’이라고 했다. 왜 1967이 아니라 1968일까? “기공일은 1967년 말이지만, 실질적으로 공사는 1968년 2월10일 밤섬 폭파로 시작됐다.” 그날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밤섬 앞 백사장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김 시장은 골재로 쓰기 위해 한강 위의 보석 같았던 밤섬을 없애버리고 백사장 위에 7.6㎞의 둘레둑을 쌓아 현재의 여의도를 완성했다. 단 110일 만의 공사였다.



밤섬에서 얻은 골재는 여의도 매립에 투입한 골재의 3.3%밖에 안 됐다. 그런데, 굳이 밤섬을 폭파해 없애버렸다. 지금 같으면 자연 유산으로 지정할 만한 아름다운 돌섬이었다. 김 연구위원은 “서울시 간부를 지낸 손정목 선생의 책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를 보면,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서 홍수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한강의 너비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나온다. 아마 홍수 때 밤섬이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홍수를 막고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한강 주변이나 섬에 둑을 쌓는 일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박정희·전두환 정부는 강가와 섬에 둑을 세우는 동시에 한강에서 엄청난 양의 준설을 했다. 왜 그랬을까? 김 연구위원은 “애초 한강 개발의 핵심은 골재 채취였다. 새 토지 확보나 홍수 방지는 부수적 효과였다. 1982~1986년 사이 준설로 2천억원을 벌었고 이것으로 2차 한강 개발 사업의 비용을 거의 충당했다. 여기서 불법 정치 자금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1984년 정부 예산이 10조원 정도였으니 2천억원은 예산의 2%에 이르렀다. 현재 예산 규모로는 13조원 정도 된다.



1969년 서울 한강의 항공 사진. 왼쪽부터 난지도, 여의도와 밤섬, 노들 백사장, 저자도, 잠실섬의 모습이 보인다. 김원 제공

1969년 서울 한강의 항공 사진. 왼쪽부터 난지도, 여의도와 밤섬, 노들 백사장, 저자도, 잠실섬의 모습이 보인다. 김원 제공




2020년 서울 한강의 항공 사진. 백사장이 완전히 사라졌고, 하천 구간이 모두 물로 덮였다. 섬들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김원 제공

2020년 서울 한강의 항공 사진. 백사장이 완전히 사라졌고, 하천 구간이 모두 물로 덮였다. 섬들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김원 제공




1968년 밤섬 폭파로 한강 개발 시작
1980년대 2차 준설로 2천억원 벌어
“개발 사업 핵심은 대규모 골재 채취
준설로 불법 정치자금 마련했을 것”





재자연화 핵심은 보 철거·모래 공급
“신곡보 허물어 물 흐름 자연스럽게
계단식 제방은 모래밭으로 바꿔야”





한강 개발은 두 차례 이뤄졌다. 1차는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7~1978년 백사장을 준설하고 여의도와 동부이촌동, 압구정동, 반포, 잠실 등을 매립해 토지를 확보한 사업이었다. 2차는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2~1986년 한강을 준설하고 2개의 보를 건설해 물을 가두는 사업이었다. 이 두 사업으로 수천수만년 동안 흘러온 한강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김 연구위원에게 한강 개발에서 가장 잘못된 점을 물었다.



“한강에서 모래를 엄청나게 파낸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 한국의 강은 주로 모래로 이뤄졌다. 강의 너비에서 물이 20~30%, 모래가 70~80%를 차지한다. 그런데 두 차례의 한강 개발에서 물 위와 물 속의 모래를 대부분 파냈다. 아름다운 모래강이었던 한강이 물로 뒤덮인 강이 돼버렸다. 현재의 한강은 강이 아니다. 인공하천, 인공호수와 같다.”



1차 한강 개발 때 없애버린 백사장의 넓이는 4060만㎡인데, 이는 한국의 대표적 바다 백사장인 해운대의 면적 5만8천㎡의 695배에 이른다. 서울 한강에서 해운대 700개가 사라진 것이다. 백사장이 사라지면서 한강의 자연스런 흐름도, 생물의 다양성도, 한강의 자연 정화도, 사람의 다양한 활동도 모두 사라졌다. 사람은 강에 다가가지 못하고 인공 콘크리트 둔치에 갇혀있다.



1차 한강 개발에서 넓은 백사장과 많은 섬이 사라졌다. 여의도는 3분의 1로 줄었고, 밤섬은 우뚝한 돌언덕이 모두 깎였고, 난지도는 쓰레기산이 됐고, 저자도는 자취도 없고, 잠실섬은 육지가 됐다. 또 한강(노들) 백사장은 노들섬이 됐고 선유봉은 선유도가 됐다.



이 가운데 가장 아까운 곳은 어디일까? 모두 아깝다면서도 김 연구위원은 잠실섬 이야기를 했다. “잠실섬에 제방을 쌓았더라도 섬으로 유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북으로 모두 한강이 굽이쳐 흘렀다. 특히 본류이면서 긴 남쪽 송파강을 메우고, 지류이면서 짧은 북쪽 새내(신천, 샛강)를 넓혀 자연과 역사를 파괴했다. 아마 더 넓은 땅을 확보하려고 그랬을 것이다.”



지난 2일 서울 성동구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사무실에서 북토크에 참여하고 있는 김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왼쪽은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제공.

지난 2일 서울 성동구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사무실에서 북토크에 참여하고 있는 김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왼쪽은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제공.


서울 한강을 과거의 아름답고 건강한 모래강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김 연구위원은 “과거의 한강보다 더 나은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강의 재자연화에서 핵심적인 두 가지는 보 철거와 모래 공급이다. 그는 “한강 하류의 신곡보를 허물어서 물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나면 낮아지는 수위를 보완할 모래를 투입해야 한다. 또 계단식으로 된 제방을 완만한 경사의 모래밭으로 바꾸는 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강을 재자연화했을 때 가장 매력적인 풍경은 요즘 같은 한여름날 강가에서 물놀이하고 몸을 그을리며 모래찜질을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초까지 서울 한강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이런 일을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김 연구위원은 두 곳을 꼽았다. “하나는 서울의 마지막 강수욕장이었던 광나루이고, 둘은 서울의 대표적 피서지였던 한강대교 부근이다. 광나루는 상류여서 수질이 좋고, 한강대교 부근은 도심에서 가깝고 노들섬이 있다.”



김 연구위원의 책을 보면, 압구정동이나 반포동, 동부이촌동, 여의도동, 잠실동 등은 모두 백사장이나 한강을 매립해서 만든 아파트 지역이다. 그런데 이 지역의 아파트들이 현재 서울에서 가장 비싼 편이다. 한강 주변의 아파트라서 그럴 수 있다. 다른 이유도 있을까? 그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한강을 재자연화할 때 한강 주변 아파트 소유자들이 반대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사람들이 모래강보다 물이 가득한 강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강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있다. 수만년 흘러온 모래강 한강의 아름다움을 안다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130년 전에 우연히 찾아온 영국인도 사랑했던 한강의 아름다움을 한국인들이 모를 리 없다. 모래강의 가치를 안다면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50~60년대 어느 여름날 서울 한강대교 아래 한강(노들) 백사장의 물놀이 풍경. 서울시 제공.

1950~60년대 어느 여름날 서울 한강대교 아래 한강(노들) 백사장의 물놀이 풍경. 서울시 제공.


김 연구위원은 오랫동안 ‘4대강 사업’에도 관여해왔다. 노무현 정부 말기 대운하 사업 검토와 이명박 정부 초기 대운하 사업 준비, 4대강 사업 검토 등에 참여했다. 그리고 4대강 사업이 끝난 뒤 여러 방식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강 개발과 4대강 사업이 쌍둥이라고 평가했다. “두 사업 모두 대규모 준설을 하고 보를 세우고 물을 채우고 배가 다니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녹조와 수질 오염이었다. 2차 한강 개발엔 이명박 대표이사의 현대건설이 참여했고, 4대강 사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했다. 한강 개발은 4대강 사업의 모델이었다.”



이재명 정부의 환경 분야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가 ‘4대강 재자연화’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 과제로 추진했지만 계획만 세우고 집행하지 못한 과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임기 초기에 4대강 문제의 목표와 시한을 밝혀야 한다. 시한을 못박지 않으면 문 정부처럼 계획만 하다가 끝난다. 또 보 처리 방안만 논의해선 안 되고 준설로 사라진 모래 공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모래가 적절히 공급되지 않으면 강은 회복되지 못한다.”



김 연구위원은 한강과 관련해 이런 소망을 이야기했다. “내 책의 내용이 교과서에 인용돼서 사람들이 한강의 진짜 모습을 알면 좋겠다. 여의도에서 밤섬까지, 한강대교 아래가, 잠실 전체가 거대한 모래밭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좋겠다. 그게 한강 재자연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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