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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멍거 다시 읽기⑥…멍거와 스탠포드대의 인연 [김재현의 투자대가 읽기]

머니투데이 김재현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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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멍거 다시 읽기⑥…멍거와 스탠포드대의 인연 [김재현의 투자대가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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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가들의 투자를 통해 올바른 투자방법을 탐색해 봅니다. 이번에는 멍거의 투자와 삶의 지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로이터=뉴스1

고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로이터=뉴스1


지난해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갔을 때, 실리콘 밸리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인상적이었던 스탠퍼드대학 캠퍼스에서 필자를 가장 놀라게 한 건, 바로 우연히 마주친 '멍거 대학원생 레지던스'(Munger graduate residence)다.

2023년 11월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99세를 일기로 타계한 후, 멍거 없이 진행된 첫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참석했는데, 스탠퍼드대학에서 멍거의 이름을 마주치다니 참 의외였다.

알고 보니 스탠퍼드대학은 멍거와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대학이었다. 멍거는 스탠퍼드대학을 졸업한 낸시 멍거와 1956년 재혼했는 데, 둘은 이전 결혼에서 태어난 자녀를 포함해 모두 8명의 자녀가 있었다. 이중 무려 4명이 스탠퍼드대학을 졸업했다.

멍거는 2004년 스탠퍼드대학에 거액을 기부해, 600명 이상이 거주할 수 있는 5개의 건물로 구성된 멍거 대학원생 레지던스를 만들었다.

이번에 살펴볼 강연 역시 멍거가 1996년 4월 19일 스탠퍼드대학 법학대학원에서 했던 강연이다. 강연 주제는 1994년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했던 강연을 회고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지혜 재고(再考)'(A lesson on Elementary Worldly Wisdom, Revisited)다.

2008년 기숙사 건설 현장을 방문한 찰리 멍거와 낸시 멍거(사진 중간의 전면)/사진=스탠퍼드 대학 홈페이지

2008년 기숙사 건설 현장을 방문한 찰리 멍거와 낸시 멍거(사진 중간의 전면)/사진=스탠퍼드 대학 홈페이지




워런 버핏이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새로 배운 것이 없다면…

멍거는 이날 강연이 2년 전 USC 경영대학원에서 한 강연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지혜'(A lesson on Elementary Worldly Wisdom)의 속편이라면서, 강연을 반복하진 않겠지만 당시 했던 말 중에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서두를 열었다.

"만일 워런 버핏이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새로 배운 것이 전혀 없다면, 버크셔는 현재 모습의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할 것"이라는 말이다. 컬럼비아에서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에게 배운 내용만 가지고도 부자가 될 수 있었겠지만, 버핏이 계속 배우지 않았다면 버크셔 해서웨이 같은 기업은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평생학습에 이어 멍거는 머리 속에 '격자틀 인식모형'(Latticework of Mental Models)이 들어있어서 직접 경험과 (독서 등으로 얻은) 간접경험을 모형 위에 배열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면 시스템에 의해서 경험들이 점차 맞물리면서 인식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멍거가 강조한 건 당연히 '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접근이다. 즉, 다양한 학문에서 주요 모형을 가져와서 모두 사용해야 하며 학문 사이의 경계를 무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정작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은 정반대다. 세상 사람들은 학문 사이의 경계를 고수하려고 하며 관료적인 거대 기업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멍거가 예로 든 건 브리지 게임이다. 브리지 게임은 미리 수를 읽어 보기도 하고 지나간 수를 돌아보기도 해야 한다며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필요한 모형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미리 내다보기도 하고 돌아보기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리지 게임에서 통하는 방식이 인생에서도 통하는 것이다. 다학제적 기법을 통해서 세상을 더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우리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을 앞서갈 수 있다고 멍거는 말했다.


멍거는 매우 좋아하는 케이스 스터디 중 하나라며 허쉬(Hershey)를 들었다. 허쉬는 1800년대 펜실베이니아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 오래된 석재 그라인더로 코코아 버터를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특유의 향을 얻게 됐다. 코코아 씨 겉껍질 일부가 초콜릿에 남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이 특이한 향을 좋아한 것이다.

허쉬는 캐나다로 사업을 확장할 때도 특유의 매력적인 향이 바뀌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기존 석재 그라인더를 복제해서 사용했다. 이렇게 특유의 향을 복제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


극단적인 사상이 판단에 미치는 영향

이날 강연에서 멍거는 사상이 인식을 끔찍하게 왜곡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멍거가 예로 든 건 노암 촘스키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는 '언어 본능'(The Language Instinct)라는 책을 통해 인간의 언어 능력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체(Genome·게놈) 깊숙이 저장된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침팬지 등 다른 동물의 게놈에는 언어 능력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들어있지 않고 인간에게만 주어진 재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이 같은 주장이 확실치 않다는 입장을 견지했는데, 멍거는 촘스키 같은 천제가 이렇게 명백한 오판을 한 이유는 그가 천재였지만 극단적인 평등주의 좌파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핑커의 관점을 인정하면 촘스키는 자신의 좌파 사상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했으며 결국 그의 사상적 편향이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멍거가 도출한 교훈은 사상이 촘스키 같은 천재도 바보로 만들 정도라면, 로스쿨 학생과 자신 같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영향을 주겠느냐는 것이다. 멍거는 젊은 시절부터 강력한 사상을 받아들여 표현하고 다니면 두뇌가 매우 나쁜 형태로 굳어버리고 그러면 인식이 전반적으로 왜곡된다고 경고했다.

워런 버핏도 흥미로운 사례다. 버핏의 아버지인 하워드 버핏은 공화당 소속으로 연방하원에서 4선 의원을 했다. 버핏은 아버지를 무척 좋아했지만, 매우 강한 우파 사상가인 아버지가 다른 우파 사상가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어려서부터 사상이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평생 사상을 멀리함으로써 정확한 인식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버핏은 정치적인 발언은 최대한 자제한다. 올해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버핏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무역이 무기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멍거는 거듭 다양한 학문에서 다양한 모형을 가져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지만, 강력한 사상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확성, 근면, 객관성을 지지하는 사상이라면 수용해도 좋지만, 최저 임금 인상이나 인하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사상을 수용하면 바보가 된다는 말이다. 왜냐면 세상은 매우 복잡한 시스템인데, 강력한 사상의 영향으로 그런 주제에 대해 철저하게 확신하면 그 사람의 사고능력은 엉망이 된다는 설명이다.

멍거는 심리학에 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십계명에도 '질투'가 몇 번 언급될 정도로 모세는 질투에 관해 소상히 알고 있었는데, 심리학 교수들은 질투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고 그 두꺼운 심리학 교과서에 질투, 심리적 거부, 인센티브에 의한 편향이 안 나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내용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멍거는 '오판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Human Misjudgment)에서 주요 심리학 모형을 모두 가져와 머리 속에 넣어두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판단 오류와 편향의 원인이 되는 25개 경향에 대해서 설명한 오판의 심리학은 멍거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글이다.

특히 4~5개 요인이 같은 방향으로 작용할 때 롤라팔루자(Lollapalooza) 효과가 나타나며 그 영향으로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으니 반드시 롤라팔루자 효과에 주의해야 한다고 멍거는 조언했다. 롤라팔루자 효과는 여러 가지 심리적 경향이 동시에 작용해서 극단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걸 뜻한다.


다학제적 기법을 이용해, 괴혈병을 방지한 쿡 선장

멍거는 심리학을 현명하게 이용한 사례도 소개했다. 쿡 선장(James Cook, 1728~1779, 영국의 탐험가, 항해사, 지도 제작자) 시대에는 장기간 항해하는 동안 괴혈병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원시적인 범선에서 수많은 선원이 괴혈병에 걸려 줄어가는 상황은 지옥과 마찬가지여서 모두 괴혈병에 관심이 많았지만, 발병 원인이 비타민 C 부족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다학제적 기법을 알고 있던 쿡 선장은, 네덜란드 배는 영국 배보다 괴혈병 사망자가 적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네덜란드 배는 도대체 뭐가 다르지?"라고 생각했다.

쿡 선장은 네덜란드 배는 모두 사워크라우트(sauerkraut: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싣고 다닌다는 걸 알고는 "나도 위험한 장기 항해를 떠날 때는 사워크라우트를 실어야겠어. 유용할지 몰라"라고 생각했다. 사실 사워크라우트에는 비타민 C가 조금 들어 있었다.

쿡 선장이 선원들에게 사워크라우트를 자발적으로 먹게 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도 재밌다. 쿡 선장은 괴혈병에 대비해서 사워크라우트를 실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는데, 장기 항해를 떠난다고 생각하면 괴혈병을 두려워하는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쿡 선장은 기관장, 갑판장 같은 고급 선원들이 선원들의 눈에 띄는 곳에서 사워크라우트를 먹게 했다. 그러나 선원들에게는 사워크라우트를 주지 않았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쿡 선장은 말했다. "이제 선원들에게도 1주일에 하루 사워크라우트를 먹게 하게."

이처럼 쿡 선장은 사람들의 심리를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해서 모두가 사워크라우트를 먹게 함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수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멍거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대부분은 매우 단순하며, 노력할 의지만 있으면 실행이 어렵지도 않다. 하지만 그 보상은 정말 엄청나게 크다"고 강연 말미에서 강조했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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