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MT문고]-'한반도 평화의 지정학'
/사진 = 21세기북스 제공 |
기원전 5세기 이전 고조선이 건국됐을 때부터 한반도는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화약고였다. 동아시아 패권을 손에 쥐려는 중국과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일본이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고 전쟁을 벌이면서 끊임없이 불길이 치솟았다. 한국전쟁이 끝난 오늘날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과 대만 복속을 노리는 중국, 전쟁 중인 러시아 등 도처에 적대적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
신성호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저서 '한반도 평화의 지정학'에서 현실적인 안보 전략을 정립해야만 위러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강대강 위협이 북한이나 중국을 압박해 되레 우리의 손실을 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북한이 핵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지 않으므로 우리나라는 남북관계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바탕으로 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책은 시종일관 안보의 객관성을 부르짖는다. 주변국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이나 비관론 모두를 경계해야 하며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실용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한반도가 생각보다 외침을 받지 않았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민족적 평화 애호의식이 학습된 프로파간다에 가깝고, 실제로는 우리가 외부를 침략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는 분석도 재미있다.
인상적인 부분은 한미·한중관계에 대한 서술이다. 저자는 동맹은 어디까지나 안보를 위한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장기적이고 신중한 성찰을 통해 한미동맹을 이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중국과의 동맹이나 남북 관계 재설정 등 다소 파격적인 주장도 제시한다. 저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동맹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안보 이익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례와 전문가의 주장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정치·이념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객관적 데이터와 연구를 제시한 뒤 현황을 분석하고 있어 중립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안보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우리의 핵무장이나 사드 문제, 인구 절벽과 군대의 재편 등 직면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몰입해 읽을 수 있다.
기계적인 중립성이 갖는 양비론은 반발의 우려가 있다. 양측의 입장을 모두 서술하려다 보니 북한이나 중국 등 우리에게 적대적인 곳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인상은 설득력을 떨어트린다. 우리 역사에서 되풀이됐던 '실리 외교'의 단점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듯 하다. '열정'이나 '상대를 인정', '진취적 노력' 등 모호한 단어는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건데?" 라는 느낌도 든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원장 및 국제안보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미국 국방부 아태안보연구소와 워싱턴 이스트-웨스트센터 등에서 잔뼈가 굵은 안보와 국제관계 전문가다. 동아시아 지정학과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 현안에 관심을 갖고 꾸준한 연구활동을 펼친다.
◇한반도 평화의 지정학, 21세기북스, 3만 5000원.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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