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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가 여성단체에 퍼준다고요? 눈 씻고 찾아봐도 '퍼주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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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가 여성단체에 퍼준다고요? 눈 씻고 찾아봐도 '퍼주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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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살롱]
"여가부의 여성단체 퍼주기" 팩트체크
여가부 국고보조금, 전체 예산의 1% 불과
한부모가족 양육비·아이돌봄서비스 대부분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소, 4인 기준 연 1.5억
매해 감시받고 이용자 만족도 조사로 평가
"국가 책무를 민간에 저렴하게 위탁한 것"

편집자주

한국일보 기자들이 직접 여러 사회 문제와 주변의 이야기를 젠더적 관점에서 풀어냅니다. '젠더, 공간, 권력' 등을 쓴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의 글도 기고로 함께합니다.


20대 대선을 앞둔 2021년 12월 윤석열(앞줄 오른쪽)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부산 부산진구 서면 일대에서 합동 유세를 하고 있다.뉴시스

20대 대선을 앞둔 2021년 12월 윤석열(앞줄 오른쪽)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부산 부산진구 서면 일대에서 합동 유세를 하고 있다.뉴시스


"여성단체에 돈만 퍼주는 여성가족부는 폐지해야 한다."

주로 선거철에, 대부분은 정치권에서 들리는 여성가족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질긴 생명력을 가졌는지, 다양하게 변주돼 이어지고 있습니다. 20대 대선에선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7자 공약으로, 올해 대선에선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의 "그 부처(여가부)의 존속으로 이득을 보는 건 여성단체 카르텔밖에 없다"는 발언으로 '전승'됐습니다. 온라인상에도 널리 퍼져 있죠.

과연 이들 정치인들 발언처럼 여가부는 '여성단체'에 무차별적으로 국민의 혈세를 퍼주고 있을까요?

여성가족부 관련 기사에 달리는 '여가부는 여성단체에 퍼준다'는 인식이 담긴 댓글들. 네이버 뉴스 캡처

여성가족부 관련 기사에 달리는 '여가부는 여성단체에 퍼준다'는 인식이 담긴 댓글들. 네이버 뉴스 캡처


국가 예산 국고보조금 중 여가부 몫은 1%


아닙니다. 일단 전체 국가예산 대비 여가부 예산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라 원천적으로 '무차별적 퍼주기'가 어렵습니다. 지난해 여가부의 예산 총액은 약 1조7,200억 원으로 국가예산 656조6,000억 원의 0.2% 수준이었습니다.

정부 부처가 직접 쓰지 않고 지방자치단체나 민간단체 등 다른 기관에 지원하는 예산인 국고보조금만 따로 떼어봐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지난해 국가예산 중 국고보조금은 109조1,000억 원이었고, 여가부의 예산 중 국고보조금은 1조5,300억 원이었습니다. 정부 19개 부 중 1개인 여가부의 국고보조금 규모는 전체의 100분의 1 수준(1.4%)인 겁니다.

정부서울청사의 여성가족부 사무실. 홍인기 기자

정부서울청사의 여성가족부 사무실. 홍인기 기자


국고보조금은 지자체에 지원되는 '자치단체이전' 보조금과 그밖의 기관에 지원되는 '민간이전' 보조금으로 나뉩니다. 국가 단위로는 지난해 전체 국고보조금 중 약 81%에 달하는 89조 원이 자치단체이전 보조금이었습니다. 여가부의 경우는 국고보조금의 97%인 1조 4,862억 원이 자치단체이전 보조금입니다. 즉 대부분 직접 사업이 아닌, 지자체 위임 사업인 것이죠.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두 사업이 여가부 국고보조금의 70%를 차지합니다. △한부모가족자녀 양육비 등 지원(5,528억 원) △아이돌봄서비스 지원(4,750억 원)으로 지방비와 매칭돼 복지 수요자 개인에게 직접 전달되는 서비스입니다.

보조금 외의 예산 1,900억 원 가량은 인건비·경비(287억 원)와 유엔여성기구 기여금 등 공적개발원조(ODA) 98억 원, 정책별 정보시스템의 구축 및 운영 비용 131억 원, 청소년치료재활센터 건립 37억 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 및 기념사업 10억 원 등입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가정폭력 상담소 지원, 액수 적고 매해 감시


보조금 지원 사업들의 면면을 보면 '퍼주기'라는 말은 더 무색해집니다. 가정폭력 상담소를 살펴보겠습니다. 가정폭력방지법은 국가와 지자체가 경비를 보조하는 등 가정폭력 상담소를 육성, 지원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라는 국가의 책무를 대신하는 민간 기관을 지원하라는 것입니다. 올해 기준 전국에 있는 국비 지원 가정폭력 상담소는 124개입니다. 여성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상담소도 있고, 다른 법인이 운영하는 상담소도 있으며, 개인이 운영하는 상담소도 있습니다. 여가부는 상담소의 운영 주체를 따로 분류해서 집계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정폭력 상담소 지원에 여가부가 배정한 보조금은 129억 원입니다. 각 상담소가 위치한 지자체도 국비와 동일하게 129억 원을 분담합니다. 상담소 규모에 따라 지원금이 다른데, 상담소장 1명과 상담원 3명으로 구성된 4인 상담소를 기준으로 연간 1억 5,480만 원을 받습니다. 법령은 상담소가 최소 면적 49.59㎡의 공간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무실 임대료를 포함해 다른 운영비가 '0원'이라고 가정해도 상담소 직원 1명이 국비와 지방비 지원을 통해 받는 인건비는 연 3,870만 원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25일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여성 살해를 규탄하며 ‘멈춘 신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 행사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2023년 한국에서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과 그 주변인 192명을 상징하는 192켤레의 신발을 바닥에 전시했다. 하상윤 기자

지난해 11월 25일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여성 살해를 규탄하며 ‘멈춘 신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 행사에서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2023년 한국에서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과 그 주변인 192명을 상징하는 192켤레의 신발을 바닥에 전시했다. 하상윤 기자


상담소가 업무를 게을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국의 가정폭력 상담소가 한 해 진행하는 상담은 약 36만 건(2023년 기준)이고, 상담소 1곳이 연간 약 2,900건의 상담을 하는 셈입니다. 여기에 여가부는 이용자를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현장 점검도 매해 실시합니다. 기획재정부 차원의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감시망도 있습니다.

만약 부정 수급이 적발돼 국고 보조가 중단되면, 우선 지자체가 공모를 통해 새로운 상담소를 추천합니다. 이후 여가부는 외부위원이 포함된 평가위원회를 꾸려 국고 보조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여가부가 특정 단체에만 일을 몰아줄 수 없는 구조입니다. 전국 99개의 성폭력 상담소에 대한 여가부의 국비 지원도 가정폭력 상담소와 동일하게 진행됩니다.

여가부의 민간 지원도, 대부분 공공기관 대상


여가부가 지자체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지원하는 국고보조금(민간이전)도 지원 대상을 보면 여성단체의 이름은 없고 공공기관이 대부분입니다. 여가부의 민간보조로 가장 많은 예산을 지원받는 기관은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으로, 운영지원 예산으로 지난해 386억 원을 받았습니다. 이어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이 가족전용상담 전화 운영 지원을 위해 56억 원을 받은 게 두 번째로 큰 민간보조 예산입니다.

지난해 여가부로부터 직접 국고보조금을 받은 비(非)공공 기관은 △대한변협법률구조재단(5,300만 원) △한국가정법률상담소(1억5,000만 원) △한국성폭력위기센터(4억200만 원) 세 곳뿐으로 모두 가정폭력, 성폭력 등 폭력피해자에 대한 무료 법률지원 사업을 합니다. 최대 600만 원의 소송비용(변호사 수임료 등)이 피해자에게 지원되고, 작년에만 1만1,872건의 지원이 이뤄졌습니다.

올해는 사업자 공모를 통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한국성폭력위기센터와 1년 단위 위탁 계약을 맺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페이스북에 올렸던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왼쪽)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페이스북 캡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페이스북에 올렸던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왼쪽)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페이스북 캡처


정리하자면 여가부는 폭력 피해자 보호라는 국가의 책무를 대신하는 민간단체에 보조금을 주고 있고, 그 금액은 '퍼준다'는 말이 옹색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를 '여성단체 퍼주기'로 지칭하는 건, 사실 왜곡입니다.

권수현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가부가 하는 성폭력 등 피해자 지원 사업은 정부가 해야할 일을 시민사회 단체에 더 낮은 가격에 위탁을 하는 것"이라며 "여가부에 대해서만 '그 돈은 누구를 위한 거냐'고 따지며 부처를 폐지하자고 하는데, 그런 주장은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보지 않기에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