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노벨 시대 한국문학 해외 진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2025 글로벌 문학 포럼’(한국문학번역원 주최)이 3~4일 서울 연세대에서 열렸다. 이틀차인 4일 오전 세션에서 김혜순 시인(왼쪽)과 김 시인의 시집 ‘날개 환상통’ 등을 미국에 번역 소개한 뉴디렉션 퍼블리싱(출판사)의 제프리 양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
“번역은 도착어(번역의 결과물 언어) 언어의 경계를 확장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일방적 관계나 수출이 아녜요. 번역가에게 요구되는 태도가 있다면, 도착어의 관용적 표현에 얽매이지 말고 번역을 통해 그 언어의 경계를 넓히고 심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번역은 도착어에 대한 선물입니다. 한국 작품이 번역되면 그 나라에 선물을 주는 거죠. 그들 언어의 우물에 돌멩이를 던져주는 겁니다.”
김혜순(70) 시인이 자신의 ‘번역론’을 이처럼 밝혔다. 4일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2025 글로벌 문학포럼’ 연사로 나서면서다. 지난해 3월 시집 ‘날개 환상통’ 영문판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이후 첫 공식 행사였다. 당시 김 시인 대신 소감을 전했던 시집 담당 편집자 제프리 양(51)도 수상 이후 첫 방한(전체 두번째)해 ‘해외 독자들에게 한국문학이란?’이란 소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당시 김 시인은 수상을 기대할 수 없어 미국 현지 시상식에 애써 참석하지 않았다.
기실 김 시인의 ‘번역 선물론’은 시인 자신을 향해야겠다. 국내 작가로서 가장 많은 종수의 시집(8종)을 단행본으로 국외 소개 중인 데다 그의 시를 번역하던 이들이 시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 시집 최초로 수상한 그리핀 시문학상(국제부문, 2019, ‘죽음의 자서전’), 국내 작가 최초로 수상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다음달 수상 여부가 발표되는 독일 세계문화의 집 국제문학상 최종후보 지명 등은 숱한 흔적의 일부일 뿐이다. 이날 김 시인은 ‘시집을 번역하는 과정에 내 목소리를 찾아갔다. 내 혀가 떠돌이 망명자의 혀란 걸 깨달았다. 번역은 내 언어를 되찾는 작업이었다’는 독일어 번역가의 고백을 소개했다.
김 시인은 시 번역에 있어서 ‘리듬의 번역’을 최우선시한다. 의미에 앞선다. “리듬과 문체의 발견 방식이 창의적인지 상호 교류적인지 중요하고, (출발어로서) 소수 언어인 한국어의 맛을 살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각기 언어에 없던 운율, 문체, 탈억압적 관념의 발현 없이 시인의 시는 살아 ‘도착’하기 어렵다.
‘날개 환상통’, ‘죽음의 자서전’ 등을 미국에 소개한 뉴디렉션 퍼블리싱(출판사)의 편집자이자 시인이기도 한 제프리 양은 “제게도 너무 생소한 시였고, 독자들도 미국서 보지 못한 시라며 굉장히 신선해 했다”며 “리듬, 에너지, 페미니즘·식민지 역사 등 굉장히 다층적으로 맞물렸고 구조 또한 흥미롭다”고 말했다.
죽음의 기운과 리듬을 매개로 한 억압의 전복, 초월적 생의 에너지는 활자 너머 낭독으로 또한 감각된다. 김 시인이 전세계 숱한 낭독 행사를 마다치 않고 참여하는 이유다. 최근 한달에 걸쳐 독일·오스트리아 6개 문학행사, 영국 대학·서점 낭독회에 다녀온 뒤 “몸살을 앓고 있다.”
김 시인은 줄곧 좌중에 웃음을 줬다. 자신의 앞도 모르는데 한국문학의 길을 전망하기 어렵다고 운을 띄우면서도, 그는 해외 언론과 청중이 좋아하는 작가를 물을 때마다 “자기네 작가를 언급해 주길 바라는 의도를 꿰뚫어” 한국 작가들을 줄줄이 소개한다고 말했다.
“한국 현대문학의 집적량이 타국에 비해 적지 않습니다. 다만 젊은 작가들의 작품 번역에 비해, 현대사와 부딪혀 써 내려간 제 전후 세대의 작품이 부족하단 생각도 합니다.”
이것이 한국문학을 위한 말이라면, 그가 더 천착하는 온전히 작가와 번역가 개별을 위한 말은 이것이다.
“작가는 누구나 각각이 나라이고 공화국입니다. 번역가도 그러리라 봅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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