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원경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조선비즈 |
새 대통령이 당선되고 한 달이 지났다. 짧은 기간이지만 국민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를 통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청와대와 내각의 주요 인선도 대부분 끝나 새 대통령이 끌고 갈 정부의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국민의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다. 하지만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과학기술계는 지난 정부에서 입은 큰 타격을 해결할 청사진이 아직 제시되지 않은 데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정부에서 과학기술을 국가 미래 전략으로 제시했고, 시대에 따라 중점 지원 분야를 선별해 집중 투자를 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새 정부는 주요 요직에 인공지능(AI) 전문가를 대거 기용함으로써 AI를 국가 미래 전략으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 구상하는 AI 대전환은 신기술의 한 분야로서 AI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과학기술 정책 차원이 아니다. 국민 생활과 산업 전반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대변혁의 시대에 앞서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겠다는 더 큰 개념으로 보인다.
대변혁에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이 정부에 기대하는 일이고, AI가 변혁을 이끄는 중심이라는 데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하지만 AI 대전환을 이끄는 일과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을 이끄는 일은 전혀 성격이 다른 일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AI 대전환 정책이 과학기술 R&D 정책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과학계 출신의 AI 전문가라고 이 둘을 통합해서 이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R&D를 주관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는 대변혁의 시대에 맞는 R&D 정책을 이끌 전문가가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윤석열 정부가 행한 비합리적 정책의 서막이 R&D 예산 삭감이 아니었나 싶다. 삭감이 결정된 이유와 어떤 절차를 거쳐 그러한 결정이 내려졌는지 아무 설명도 없었던 것은 정상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하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연구비 삭감으로 인한 타격은 해당 연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국제통화기금(IMF)발 경제위기에서도 예산을 줄이지 않았던 과학기술 R&D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다.
이제 새 정부가 세워졌으니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져보지만 단순히 삭감했던 예산을 복구하기만 하면 무너진 시스템이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뤄진 근거 없는 R&D 예산 삭감,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점투자 분야가 달라지며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이 필수인 기초연구까지 흔들리는 현실은 R&D 정책과 예산 결정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이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현장 경험을 가진 과학자가 단순한 자문을 넘어 과학정책 설계와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하고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이 단지 산업 지원 수단이 아니라 미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이며 문화이기도 하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AI 시대를 넘어 포스트 AI 시대까지 대비하는 정부를 기대한다.
호원경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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