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탈리아 로마에서 관광객들이 콜로세움 외부에 설치된 냉풍기 앞에 서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
장예지 | 베를린 특파원
유럽의 폭염 뉴스가 쏟아졌던 2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의 기온은 38도까지 치고 올라갔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없는 집 안에서 지내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한국과 비교하면 독일의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크게 떨어진다. 공유 오피스로 대피하기 위해 부산스럽게 나섰지만, 바깥에선 5분도 채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햇빛이 뜨거웠다. 이날은 올해 여름 베를린에서 가장 더운 날로 꼽혔다. 일부 지하철 노선은 ‘수동 운행’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극심한 더위로 선로가 팽창하거나 신호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지상 구간 운행을 수동으로 제어한 것이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야외 수영장을 찾은 사람들이 급증해 이른 오후부터 수영장 입장권은 동이 났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남부 유럽의 상황은 아찔할 만큼 심각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에선 산불로 2명이 숨졌고, 66.1㎢(2000만평) 이상이 불에 탔다고 했다. 또 안달루시아에선 하루 전 75살 남성이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스페인 전역에서 11곳에 폭염경보가 울렸고, 기온은 43도까지 올랐다. 프랑스 기상청도 이날 동부 지역 4곳에 최고 경보를 울렸다. 프랑스 에너지장관은 이날 폭염 때문에 2명이 숨졌고, 이번주에만 300명이 병원에 실려 갔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2015∼2020년 발생한 폭염이 최대 53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 것으로도 추산했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세르비아 등도 모두 가장 심각한 수준의 적색경보를 울린 상황이다.
이러한 폭염의 배경에 기후변화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전세계 기후정책을 선도했던 유럽이 일보 후퇴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은 계속 나온다. 당장 이날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40년 기후목표를 명시한 기후법 개정안 초안을 발표했는데,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90% 감축하는 안에 감축분 3%는 개발도상국 등 제3국에서 탄소 배출권을 구매해 충당할 수 있도록 했다. 기후단체들은 주요 탄소 배출국이 직접 감축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탄소 배출권 거래를 비판해왔다. 특히 유럽연합이 여기 나선다면, 유럽 밖 다른 국가의 기후정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기후 리더십이 가장 필요한 순간 유럽연합이 그 역할을 저버린다는 지적도 있었다.
각국 극우 정당들이 퇴조하는 기후정책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은 2027년 대선을 앞두고 “에어컨이 삶을 살린다”며 대규모 에어컨 보급 정책을 기후변화 대처 방안으로 내놨다. 당장 프랑스 환경장관인 아녜스 파니에뤼나셰는 “프랑스는 20년 전부터 노인 요양시설에 대한 에어컨 설치를 의무화했다”며 폭염에서 취약 계층을 특히 보호해야 하는 건 맞지만, 실외 기온을 더 높일 뿐인 에어컨을 설치하는 건 “잘못된 선택”이라고 일갈했다. 기후변화 자체에 회의적인 극우 정당이 그 대응을 위한 핵심적인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올 폭염은 한동안 계속되고, 다음해와 그다음해에도 유럽을 데울 것이다. 뉴스도 그에 따른 자연재해와 인명 피해를 전하고, 당장 더위를 견디는 법 등을 전할 것이다. 하지만 이 더위를 참아내고 유럽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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