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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 극우화보다 중요하다…한국의 극우화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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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 극우화보다 중요하다…한국의 극우화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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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 영장이 발부되자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기물과 유리창 등을 파손한 지난 1월19일 오후 건설업자가 깨진 창문의 블라인드를 제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 영장이 발부되자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기물과 유리창 등을 파손한 지난 1월19일 오후 건설업자가 깨진 창문의 블라인드를 제거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이대남’ 극우화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필요한 논의이긴 하나 ‘이대남’ 극우화보다 중요하고, 따라서 더 적극적으로 분석해야 할 현상이 있다. 바로 ‘한국의 극우화’다. ‘이대남’ 극우화는 한국사회 극우화의 부분적 현상일 뿐이다.



‘이대남’ 극우화를 둘러싼 입장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이대남’ 극우화는 명백하다. 둘째, ‘이대남’은 동질적 집단이 아니며 극우화 규정은 낙인찍기다. 셋째, ‘이대남’은 극우화된 게 아니라 보수화됐다. 두번째 입장, 즉 ‘‘이대남’ 내부에 다양성이 존재하며 이들을 극우로 낙인찍는 것이 위험하다’는 지적에는 원론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으로서, 선거철마다 불거지던 청년 보수화 담론과 반민주당 성향을 악마화하는 행태를 오랫동안 비판해왔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최근 ‘이대남’의 극우화 경향은 부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또렷하다. 2025년 1월 동아시아연구원의 ‘양극화 인식 조사’에 따르면, “상황에 따라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는 문장을 가장 많이 선택한 집단은 70대 남성이고 그다음이 20대 남성, 30대 남성 순이었다. 같은 시기 한국사람연구원의 ‘2024 대한민국 내셔널 어젠다 조사’를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 안함’ 비율에서 20대 남성이 전 연령·성별 통틀어 최고였고 ‘동의함’ 비율은 최저였다.



‘이대남’ 극우화론은 그들 전체가 극우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대남’ 상당수가 극우화되고 세대 여론을 주도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이대남’은 동질적 집단이 아니다’라는 명제와 ‘‘이대남’ 내부에 극우화 경향이 확연하다’는 명제는 양립 가능하다. 다만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극우화’나 ‘보수화’가 무엇인지 명확한 개념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이러면 논의가 공회전할 수밖에 없다. 혹자는 계엄이나 탄핵, 또는 주류 양당 지지 여부로 극우를 판단한다. 하지만 이는 정치 부동층의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과 한국 정당정치의 과소한 대표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너무 단순한 접근이다. 지금 ‘이대남’ 극우화의 주된 근거로 제시되는 건 21대 대선 출구조사인데, 한국의 출구조사 수치와 실제 투표 결과의 괴리가 매우 크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극우에 대한 학문적 정의들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대체로 유럽이나 미국 상황에 기반을 둔 것으로, 한국의 극우 현상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 유사점도 많지만 차이점, 예컨대 극단적 반공주의, ‘약육강식’을 맹신하는 사회진화론, 극우 정당이 제도권에 진입하기 어려운 정치 환경 등 한국적 특수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시험 성적에 따른 인간 차별을 당연시하는 능력주의 규범이 민주주의 규범을 압도해버린 현실은, 극우가 발호할 최적의 ‘배양토’이자 ‘발사대’가 되었다.



이러한 ‘한국형 극우’의 구체적 개념화는 향후 과제로 남겨두더라도 최소주의적 정의, 즉 ‘극우는 최소한 이런 것’이라는 규정은 가능할 것 같다. 극우란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려는 시도 또는 이를 정당화하는 우익 이념’이다. 이건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화’와는 다른 것이다. 이렇게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관점에서 극우를 규정하면 ‘내란범’ 윤석열과 법원을 습격한 그 지지자들은 물론, “상황에 따라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답한 사람도 극우에 속할 수 있다. 극우화는 주로 엘리트들이 주도한 “위로부터의 퇴행”(박선경, ‘한국 정치 엘리트와 민주주의 퇴행’)이긴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혐오·차별적 ‘밈’을 폭발적으로 생산·소비하는 주체들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퇴행’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의 극우화는 그렇게 위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퇴행이 동시발현하고 상호작용한 결과다.



2025년 5월 한국리서치 보고서 ‘한국 사회 극우의 현주소’를 보면, 한국에서 극우 성향으로 분류된 집단은 전체 응답자의 약 21%에 달했다. 반면 ‘극좌’는 0.2%였다. 극우의 기준에 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 숫자를 보면 사회가 얼마나 오른쪽 극단으로 치우쳤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극우화된 사회에서는 인간을 차별하고 억압할 뿐 아니라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된다. 한국의 극우화를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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