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6월27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들과의 당정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록삼 | 언론인
불과 1년 남짓 전 이맘때 일이다. 22대 총선은 범야권에 무려 192석을 안겼다. 안하무인 윤석열 정권에 대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그럼에도 개헌 가능한 200석까지 몰아주지 않았다. 반성하고 혁신하길 바라는 일말의 기대감 탓이었으리라.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이러한 메시지를 국민의힘은 사실상 부정하거나 거부했다. 당시 22대 국회 원구성 협상에서 관행 운운하며 법제사법위원장을 자신들이 맡겠다고 우격다짐했다. 법사위를 쥐고서 여전히 윤석열, 김건희 방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의지뿐이었다. 여론은 싸늘했다.
2019년 이른바 ‘국회 빠루 사건’ 당시 법사위를 틀어쥔 채 행했던 패악의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여상규 법사위원장을 포함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소속 60여명은 특수감금, 법안 탈취, 기물 파손, 회의장 봉쇄 등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여 위원장은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이 사건을 수사하지 말라고 검찰에 노골적인 압력을 넣었다. 이 형사재판은 5년째 지지부진하게 진행 중이다. 어쨌든 국민의힘으로서는 법사위원장 확보의 정치적 효능감만큼은 분명히 확인했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보여준 모습에도 변화는 없었다. 성찰 없는 수직적 당정 관계에 머물렀으니 여전히 ‘윤석열(혹은 김건희) 여의도 출장소’라는 비아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위헌 위법한 내란을 겪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5년 6월 또다시 ‘야당 법사위원장론’을 떼쓰듯 폈지만 역시나 헛심에 그쳤다. 여기에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구하며 국회 숙식 농성까지 벌였다. 이에 앞선 지난달 22일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여야 지도부의 대통령과 점심 식사 자리에서 준비해 온 장문의 종이를 꺼내 읽었다. 일종의 ‘미러링 앙갚음’ 혹은 모욕 주기에 가까웠다. 취임 이후 2년 동안 야당 대표의 회동 요청을 8차례나 거부했던 당시 대통령 윤석열씨가 721일 만에 떠밀리듯 야당 대표를 처음 만난 상황과, 취임 18일 만에 야당 대표를 불러 대화 정치를 복원하려는 상황이 같다고 볼 국민은 별로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여야 대화, 협치는 바닥으로 무너진 정치 복원의 시작이다. 하지만 분명한 전제가 있다. 내란 옹호 동조에 대해 시늉뿐인 듯한 사과에 그치며 후안무치를 반복하는 상황을 국민의힘 스스로 풀어내야 한다. 내란 옹호 세력과 공존하는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벗지 못하는 한, 정부 여당이 아닌 국민들이 오히려 협치를 동의해주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힌트가 있다. 국민의힘이 진정 협치를 원한다면 유임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사례를 유심히 들여다보길 권한다. 송 장관은 12·3 비상계엄 국무회의에 참여했고, 내란 실패 이후 장관직 사퇴 등 책임 있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국회의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을 ‘농망법’으로 이르며 반대한 문제적 인물이기도 했다. 대다수 농민의 반발이 거센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송 장관은 계엄 이후 몇 차례에 걸쳐 반성의 뜻을 표시했고, 농업개혁과 농민 민생 회복의 구체적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가 소신 없이 장관직만 탐하는 인물인지, 민심이 가리키는 방향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이를 향해 나아가는 유연한 행정 관료인지는 머지않아 결과로 증명될 것이다. 국민의힘은 송 장관을 향해 기회주의자 운운으로 자진 사퇴를 요구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는 철저히 실용의 가치에 방점이 찍혀 있다. 송 장관 유임은 물론, 하정우 대통령실 에이아이(AI)미래기획수석비서관을 통해 시장과 기업, 정부의 유기적 관계 설정을 염두에 두며 독립적으로 통제·운영 가능한 ‘소버린 인공지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전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의 김영훈 철도기관사를 고용노동부 장관에 지명해 노사정 대화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도 모두 실용의 가치에 기반한다. 물론 대전환기 국가적 과제의 방향 및 비전 설정이라는 측면에서 ‘이익과 실용 추구’의 가치에 불안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며, 앞으로 또 다른 인사에서 실패가 드러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인사에 트집을 잡는 식으로 정치적 반사이익을 바랄 것이 아니라 처절한 반성으로 관성적 구태와 절연해야 한다. 실사구시적으로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협치는 충분히 이뤄질 것이고, 건강한 보수정당의 위상을 되찾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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