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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폰에 대한 변명은 없나요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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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폰에 대한 변명은 없나요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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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정 검찰총장이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퇴임식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며 차량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심우정 검찰총장이 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퇴임식을 마친 뒤 청사를 나서며 차량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곽진산 | 법조팀 기자



칼럼을 쓰기 전엔 사실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기대한다. 세상이 아무 일 없이 평온하고 취재에도 별다른 소득이 없다면 글을 쓰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주도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를 얌전히 고민했다. 내겐 매우 충격이었던 기성용 선수의 포항스틸러스로의 이적 논란을 적어 보자니 검찰을 취재하는 기자 처지엔 너무 사사로운 얘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1일 심우정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뒤 2일 퇴직했다. 임기는 1년여 남았지만, 취임 9개월 만에 직을 내려놓은 것이다. 심 총장은 퇴직 전 마지막으로 다섯 문장의 사직 입장문을 남겼다. 지금 직을 내려놓는 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며, 형사사법 제도를 만들 땐 심도 깊은 논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말도 그간 총장으로 재직한 임기만큼이나 짧았다.



심 총장이 내놓은 말들은 사사롭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 개혁에 대해 해당 기관의 수장으로서 조직을 향한 말을 남겼다. 또 그 입장문과는 별개로 2일 퇴임식에서도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필수적이고 정상적인 역할까지 폐지하는 것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옳은 길이 아니”라며 검찰 개혁에 대한 반발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의 향연엔 정작 궁금한 얘기가 빠져 있다. 심 총장은 지난해 10월10~11일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과 이틀간 두차례 총 24분간 통화했다. 둘은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하지 않았다. 대통령경호처에서 지급되는 비화폰으로 대화했다. 비화폰은 군이나 외교 등 극도의 보안을 요구할 때 사용되는데, 검찰총장은 극도의 보안이 필요한 자리는 아니다. 이전 정권이 검찰총장에게 비화폰을 지급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부적절하게 사건 논의를 하려 했다면 보안이 필요할 순 있겠다. 비화폰으로 통화했던 당시 검찰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불기소 처분을 앞두고 있었다. 시점이 묘했다.



그런데 심 총장은 당시 비화폰 한겨레 보도가 나온 뒤, “검찰 사건과 관련해 통화한 사실은 없고 검찰 정책과 행정에 관한 통화를 했다”고 해명했다. “어떤 경위로 입수했는지 모르겠다”는 까칠한 반응과 함께 말이다.



검찰 정책과 행정에 관한 통화를 비화폰으로 했다는 말을 세상 어느 누가 믿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러니 여전히 심 총장께 듣고 싶은 게 많다. 왜 굳이 비화폰을 통해 대통령실 그것도 민정수석과 통화를 했나. 전임 이원석 총장이 두고 간 비화폰을 인계받아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했다 해도 그런 판단 자체로도 무능일 것이다. 심 총장의 말마따나 전임 정권에서 비화폰으로 얘기했다던 ‘검찰 정책’에 대해서 퇴임식 때는 공개적으로 시원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나. 심 총장이 퇴임하면서 내놓은 검찰 개혁에 대한 반대 메시지가 날카롭기는커녕 공허하게 느껴지는 건 그저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심 총장의 비화폰 기록은 어쩌면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이 없었다면 말이다. 비상계엄이 없었던 평행 우주가 있다면 심 총장께선 어느 때쯤 아름다운 퇴임식을 거행하게 되었을까. 그런 우주가 있다면 그곳에선 퇴임식의 변으로 검찰 개혁에 대한 반발을 꺼낼 일은 없었길 바란다. 사사로운 추억만 얘기했길 바란다.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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