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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가장 흥행한 한국영화'
봉준호 감독 '기생충'의 흥행 성적을 단숨에 뛰어넘으며 K-애니메이션의 기적을 써내려가고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한국 개봉에 앞서 지난 4월 11일 미국 할리우드에서 공개돼 극장 매출 6000만 달러(약 815억 원)를 돌파한 한국 토종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입니다.
<킹 오브 킹스>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아들 ‘윌터’와 20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직접 지켜보며 사랑과 희생의 의미를 깨닫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예수의 일생'이라는 익숙한 이야기를 판타지와 어드벤처 요소를 결합한 흥미로운 방식으로 엮어 새로움을 꾀한 영화는 오는 16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기획에서 개봉까지 걸린 시간만 꼬박 10년, 디즈니·픽사의 시대를 넘어 K-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연 <킹 오브 킹스>의 장성호 감독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예수의 일대기? '보편적 사랑 이야기'
Q. 간단한 영화 소개
A. 예수라는 인물을 다루면서도 무겁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보다 편안하고 쉽게 전달하고 싶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그런 고민을 많이 했고, 그래서 택한 형식이 애니메이션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연령대가 높은 관객이나 예술적 소재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자신한다. 미국에서의 좋은 반응이 이를 증명해 준 것 같고, 이제 모국에서도 극장에서 꼭 보러 와주셨으면 한다.
Q. 예수 이야기임에도 종교 불문해 사랑받은 비결은?
A. 종교를 떠나 보편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세대나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라는 인물은 역사적으로 실존했음은 부인하기 어렵고, 인류 역사에 문화·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에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본다.
소재를 선택할 때 물론 부정적인 시각도 많았다. 뻔하게 흐르거나 특정 종교인의 전유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충분히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성경 속 보편적 주제를 재미있게 표현하면 충분히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타임슬립물의 형식에도 주목해 주길 바란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예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의 여정을 담았고, 판타지와 어드벤처 요소를 풍부하게 더했다.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멋진 장면이 많다.
Q. 찰스 디킨스의 원작 <예수의 생애>를 택한 이유는?
A. 찰스 디킨스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대중들에게 직접 책을 읽어주는 낭독회를 열어 영국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런 분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라면 얼마나 진심으로, 열정적으로 전했을까 상상했다. 그 틀 안에서 2천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설정이라면 이야기를 한층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디즈니 인맥+국내 기술력…제작비 충당 '우여곡절'
Q. 제작 기간 10년 끝의 쾌거다. 가장 기뻤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은?
A. 가장 기뻤던 순간은 미국 개봉 당시 로튼토마토 지수 98%, 시네마스코어 A+ 등급을 받았을 때였다. 프리미어 시사회 이후 “이 작품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어린아이들이 집중해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SNS에 릴레이 형식으로 공유되는 걸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힘들었던 순간은 투자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배급이 결정돼 제작비 충당과 관련해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을 때였다. 기획 자체는 미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투자를 연결해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으나, 미국에서 투자를 받는 순간 지식재산권이 넘어가는 구조라 순수 국내 자본으로 끝까지 제작하며 권리를 지켜내는 데 주력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결국 완성해냈다.
Q. VFX(시각효과) 부문에선 베테랑이시지만, 연출 도전은 처음인데 어땠나
A. 국내에서는 소재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고, 제가 연출자로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뢰를 얻지 못해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저를 잘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시나리오 자체만 보고 판단해 줘 훨씬 더 소통이 원활했던 것 같다. 그 부분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Q. 감독님도 신자라고 들었다.
A. 맞다. 다만 현재 국내에 반기독교 정서가 강한 편이고, 본인 성격상 전도를 잘하는 편도 아니다. 대신 설교나 강요 없이, 자연스럽게 예수라는 인물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아이들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기를 바랐다.
Q. 제작과정에서 해외 디즈니 출신 등 유수 유명 디렉터들이 참여하는 등 라인업 화려해
A. VFX 작업을 하면서 감사하게도 할리우드 영화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함께했던 스태프들이 모두 할리우드 메인스트림에서 활약하던 분들이라, 그 인연으로 훌륭한 전문가들을 소개받고 함께 일할 수 있었다. 특히 캐스팅 보이스 디렉터였던 제이미 토마슨은 디즈니에서 16년간 근무하며 캐스팅 부서를 창설한 베테랑이다. 그분이 이번 작품의 소재를 매우 흥미롭게 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신 덕분에 훌륭한 배우들도 많이 캐스팅할 수 있었다.
기술력은 이미 세계적 수준…핵심은 스토리·충분한 지원
Q. 해외와 비교할 때 한국의 애니메이션 기술력은 어느정도라고 보는가?
A: 우리 기술력은 이미 충분히 훌륭하다고 본다. 이번 작품도 그런 결과물 중 하나. 그렇다고 해서 나만이 이 정도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국내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기술적으로 충분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고, 결국 중요한 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Q. 핵심은 결국 스토리의 문제인가?
A. 그렇다.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정서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한국적 색채를 지워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나라 작품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충분히 통용되고 있으며, 그런 콘텐츠를 잘 만들어내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 눈치를 보거나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Q. 화려한 더빙진 섭외 배경은?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너무 과장된 표현 방식은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국내 더빙진 선정에도 그 점을 반영했다. 이병헌 배우부터 이하늬, 진선규, 양동근, 차인표 배우님 등 모두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해주셔서 만족한다.
Q. 2015년 제작후 올해로 10년. 그 사이 달라진 K-콘텐츠의 위상 실감하는지
A.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 이 작품을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BTS가 빌보드 1위를 하고,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는 상황은 상상조차 못했다. 우리 작품이 호평을 받고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도 K-콘텐츠 열풍의 덕을 크게 봤다고 생각한다. 특히 할리우드 스태프들과 일하면서 느낀 점은 예전에는 '한국이 어디냐'는 식이었다면 이젠 동료 의식을 갖고 동업자로서의 시선으로 바라봐 준다는 것이다. 최전선에서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동지처럼 대해 주는 분위기가 생겼는데 그 변화가 정말 크고 놀랍다고 느낀다.
Q. 우리나라가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불모지라는 평가도 있다
A. 성공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안 된다는 인식이 생겼던 것 같다. 예전에도 영화계에서 사극은 안 된다고 했지만 <왕의 남자> 이후 훌륭한 작품들이 쏟아졌고, 좀비물도 안된다고 했지만 <부산행>이 성공한 뒤 많은 좋은 작품이 나왔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따라준다면 앞으로 놀라운 작품들이 계속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애니메이션은 아무래도 제작비가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보니, 일반적인 콘텐츠 지원 수준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조금 더 긴 안목으로 지원 확대를 계획해 주면 좋겠다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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