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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큐레이션] AI 저작권, 이제 고민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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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큐레이션] AI 저작권, 이제 고민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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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홍 기자] 미국 법원이 AI 훈련을 위한 도서 자료 사용은 '변형적 이용'에 해당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이른바 '공정 이용' 판결을 내놓았다. AI가 원본 저작물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 '변형'해서 사용했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미묘한 지점도 있다. 학습에 사용된 책을 불법 복제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행위 자체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고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AI 저작권 소송의 쟁점이 데이터의 '학습 방식'에서 '확보 과정의 합법성'으로 옮겨갈 것임을 시사한다.


"저작권 침해 아니다"
윌리엄 알섭 샌프란시스코 연방 판사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작가들이 AI 기업 앤트로픽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사실상 앤트로픽의 손을 들어줬다. 앤트로픽이 AI 모델 '클로드'를 훈련시킨 행위가 "기존 저작물을 새로운 목적과 의미로 재창조한 '변형적' 행위"라며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AI가 책의 창의적 표현을 대중에게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 한 학습 과정 자체는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앤트로픽이 데이터 확보 과정에서 보인 불법성은 명확히 지적했다. 그는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었던 책을 해적 사이트에서 다운받은 행위가 '공정 이용'에 왜 필요한지 설명하지 못한다"며 이는 작가들의 권리를 침해한 행위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AI 학습 저작권을 사실상 인정했다는 점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는 중이다.


이번 판결은 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한 미 법원의 첫 구체적인 판단으로, 뉴욕타임스,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 빅테크와 창작자 그룹 간에 진행 중인 여러 소송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테크 업계는 일단 안도하면서도 소송 리스크 자체를 피하기 위해 뉴욕타임스가 아마존과 콘텐츠 제공 계약을 맺는 등 창작자와의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서두르는 추세다.

논쟁은 두 가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 촉발한 저작권 대전(大戰)이 본격화하고 있다. AI가 인터넷의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창작물을 쏟아내면서, '무엇을 창작으로 볼 것인가'라는 저작권법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AI의 학습 과정은 저작권 침해인가, AI가 만든 결과물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를 두고 끊임없는 분쟁도 벌어지는 중이다.


논쟁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학습 데이터' 문제다. AI 모델을 훈련시키기 위해 뉴스 기사, 소설, 이미지 등 저작권이 있는 데이터를 허락 없이 대규모로 사용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것이다.

둘째는 AI가 생성한 '산출물'의 문제다. AI가 만든 소설이나 그림에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는지, 만약 인정된다면 그 권리는 AI 개발사, 이용자, 혹은 제3자 중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법적 공백 상태다.


창작자들은 AI 기업의 데이터 학습 행위를 명백한 저작권 침해로 규정한다. 자신의 창작물이 동의나 보상 없이 AI 기업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세기의 소송'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NYT)는 OpenAI가 자사의 기사 수백만 건을 무단으로 학습시키고, 챗GPT가 기사 내용을 거의 그대로 출력해 유료 구독 모델을 위협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세계적인 스톡 이미지 기업 게티이미지 역시 이미지 생성 AI '스테이블 디퓨전'이 1200만 장이 넘는 자사 이미지를 불법 학습하고, 심지어 워터마크까지 훼손된 이미지를 생성했다며 미국과 영국에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에 맞서 AI 기업들은 '공정 이용(Fair Use)' 원칙을 방패로 내세운다.

원본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에서 패턴과 스타일을 학습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변형적 이용'이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미 법원이 최근 AI 기업 앤트로픽의 손을 일부 들어주며 "AI 모델의 학습 행위 자체는 변형적 이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결한 점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불법 사이트에서 데이터를 내려받아 획득한 행위는 명백한 침해"라고 선을 그어 데이터 확보 과정의 적법성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으나 현 상황에서는 빅테크에 유리한 판결이라는 설명이다.


AI는 창작의 주체 될 수 있나…'인간의 기여'가 관건
현행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보호 대상으로 명시한다. 그리고 이 '인간 중심성' 원칙에 따라 미국 저작권청과 한국 법원은 AI가 독자적으로 생성한 산출물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인간의 역할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단순히 "고흐 스타일로 밤하늘을 그려줘"와 같은 명령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이용자가 수십 번의 명령어를 수정하고 매개변수를 조정하며 결과물을 선택·편집하는 등 구체적이고 반복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면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중국 법원은 이러한 이용자의 '지적 노동'이 투입된 AI 생성물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아 주목받은 바 있다. AI를 '붓'처럼 활용한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있다면 저작권 보호가 가능하다는 해석의 길을 연 것이다.

한편 AI 저작권 문제에 대한 해법은 국가별로 뚜렷한 온도 차를 보인다.

우선 미국은 소송 결과를 지켜보며 판례를 통해 기준을 만들어가는 '시장 중심적 접근'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EU)은 세계 최초의 포괄적 규제인 'AI 법(AI Act)'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AI 기업에 학습 데이터의 요약본 공개를 의무화하고, 저작권자가 자신의 저작물이 학습에 사용되는 것을 거부할 권리('옵트아웃')를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은 '정보 해석' 목적의 데이터 이용을 폭넓게 허용하며 세계에서 가장 AI 친화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법 개정 대신 문화체육관광부의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를 통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AI 사업자에게 적법한 데이터 이용을 권고하고, 저작권자에게는 '옵트아웃'을 장려하며,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있을 때만 저작권을 인정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상태다.

상생의 길 없나

대립과 소송을 넘어 기술 혁신과 창작 생태계가 공존할 수 있는 대안 모색도 활발하다. 오픈AI가 AP통신 등 언론사와 콘텐츠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등 자발적인 해법이 등장하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법·제도적으로는 저작권 신탁관리단체가 AI 기업으로부터 포괄적으로 저작권료를 징수·분배하는 '확대된 집중관리제도(ECL)'나 정부가 보상 기준을 정하는 '법정허락' 제도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결국 AI 기술이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의 지평을 여는 도구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기술 발전의 혜택이 AI 기업에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그 토대가 된 수많은 창작자에게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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