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스포티비뉴스 언론사 이미지

"KBO 최초 5인 선발로테이션 만드신 분" 故 이광환 감독과 1994년 무적 LG, 그는 왜 한국야구의 선구자인가

스포티비뉴스 윤욱재 기자
원문보기

"KBO 최초 5인 선발로테이션 만드신 분" 故 이광환 감독과 1994년 무적 LG, 그는 왜 한국야구의 선구자인가

속보
여야 "통일교 특검, 각자 법안 제출 후 협의해 신속 실행"



[스포티비뉴스=사직, 윤욱재 기자] "한국야구에서 최초로 5인 선발제를 만드신 분이다"

1990년대 LG의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자율야구의 대부' 이광환 전 감독이 2일 별세했다. 향년 77세.

이날 LG와 롯데의 경기가 열린 부산 사직구장은 물론 KBO 리그 경기가 열린 5개 구장에서는 경기 전 이광환 전 감독을 향한 묵념을 실시했다.

고인은 프로 원년이었던 1982년 OB에서 타격코치를 부임, OB의 원년 우승과 함께했고 1986~1987년에는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와 일본프로야구 세이부에서 코치 연수를 받으며 선진 야구를 체득했다.

이광환 전 감독은 1988년 OB 2군 감독을 거쳐 1989년 OB 사령탑으로 정식 부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당시만 해도 '자율야구'는 낯선 개념이었고 OB의 전력도 강하지 않았다. 1990시즌 도중 OB를 떠난 이광환 전 감독은 1992년 LG 감독에 부임하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고 1993년 LG를 플레이오프 무대로 이끌면서 조금씩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자율야구'가 만개한 시점은 바로 1994년이었다. 이광환 전 감독은 이상훈~김태원~정삼흠~인현배로 이어지는 탄탄한 1~4선발을 구축하고 김기범, 박철홍, 차명석, 전일수 등 다양한 선수들을 5선발로 기용하며 5인 선발로테이션을 가동했다. 여기에 셋업맨 강봉수, 차동철과 마무리투수 김용수까지 자리했다. 이른바 '스타 시스템'을 운영한 것이다.


여기에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 등 신인 3총사를 1~3번 타순에 과감하게 배치하면서 '초대박'을 터뜨렸고 해태에서 트레이드로 온 '해결사' 한대화가 4번타자로 팀 타선의 중심을 잡았다. '검객' 노찬엽을 비롯해 김동수, 최훈재, 박종호, 김선진, 박준태, 김영직 등 여러 선수들이 뒤를 받치며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LG는 시즌 초부터 선두 자리를 독주했고 정규시즌 우승은 물론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했다. 태평양과 맞붙은 한국시리즈는 단 한번의 패배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LG는 당대 무적의 팀이었다.

LG는 1995년에도 1위 싸움을 전개하며 2년 연속 우승을 노렸으나 OB에 역전을 당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해야 했고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 2승 4패로 무릎을 꿇으며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이광환 전 감독은 1996년 성적 부진으로 시즌 도중 LG를 떠났고 2001~2002년 한화 사령탑을 거쳐 2003년 LG로 컴백했으나 1년 만에 다시 LG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2008년 우리 히어로즈에서 감독직을 맡은 것이 프로 커리어의 마지막으로 남았다.

선수 시절 이광환 전 감독과 함께 했던 차명석 LG 단장은 "이광환 감독님의 부고 소식을 접해 너무 안타깝다. 감독님께서는 한국야구에서 최초로 5인 선발제를 만드신 분이고 아무도 하지 못했던 자율야구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분이다. 한국야구의 변화와 발전을 주도하셨던 한국야구의 선구자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나라 야구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셨다"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LG의 1994년 돌풍을 이끈 신인 3총사 중 1명이었던 서용빈 LG 전력강화 코디네이터 또한 "우리 프로야구에서 지도자로서의 한 획을 긋고 1994년 우승을 함께 만들어주신 감독님이셨다"라면서 "올 시즌 홈 개막전 시구를 하실 때만 해도 이 정도로 건강이 나쁘지는 않으셨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너무 당황스럽고 한국야구의 큰 별이 돌아가셔서 너무나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