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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겜3’ 박규영 “‘스포’는 어리석은 실수…겸손함, 책임감 배웠다” [인터뷰]

헤럴드경제 손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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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겜3’ 박규영 “‘스포’는 어리석은 실수…겸손함, 책임감 배웠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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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시즌3 핑크 병정 ‘노을’役
“SNS 스포는 실수…자책 많이 했다”
삶의 희망 잃은 노을, 연기톤·외모로도 표현
“오겜 통해 많은 것 배워…인생 터닝포인트”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변명의 여지 없이 어리석었습니다. 실수였고, 굉장히 후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의 시작과 함께 박규영은 고개를 숙였다. 죄책감 속에 보낸 자성의 시간이었다. ‘오징어 게임’ 시즌 3이 역대급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시즌3 공개 전 그의 인스타그램 한 장의 사진으로 불거진 ‘스포일러’ 논란이 오늘까지도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당시 ‘박규영이 대형 사고를 쳤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이 거셌지만, 지난 제작발표회 때에도 “노을과 경석의 서사를 작품으로 확인해달라”며 말을 아낀 그다.

“작품이 공개되기 전이라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릴 수 없었어요. (작품 공개 이후) 공식 인터뷰를 통해 모든 것을 말씀드리기 전까지는 뭔가 마주할 용기를 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 생각이 모두 전달이 되면 그제야 시즌3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오징어 게임’ 시즌3에서 병정 ‘노을’을 연기한 배우 박규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깊은 사과로 시작한 인터뷰는 ‘노을’이라는 인물을 거쳐 결국 박규영이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삶에 대한 의지가 없는 인물…경석에겐 부모의 감정 동기화”

넷플릭스에서는 그에게 ‘조심해달라’는 당부 외에 다른 말은 없었다. 박규영은 “계약 사항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위약금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고 했다. 황동혁 감독도 지난 제작발표회 당시 “인간은 누구나 타의든 자의든 실수를 한다”며 박규영의 편에 섰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짓누르는 자책은 피할 수 없었다.

박규영은 “죄책감이 굉장히 많았다. 작품 속에서 연기자가 가져야 하는 책임감에 대한 통찰도 많이 했다”며 “신중함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스스로 생각하고 결말을 찾는 방법을 고민하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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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은 모든 시즌을 통틀어 유일하게 병정(핑크가드)의 시선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캐릭터다. 등장 장면이 많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고려해도 인물의 상태나 심리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오징어 게임 세계관에서 유독 많은 설명이 필요한 인물인 이유다.


노을은 단발로 게임 참가자들의 숨통을 끊는 냉정한 인물이다. 그렇다고 탈락자의 시신으로 돈을 버는 다른 병정들의 장기 밀매 현장을 묵과하지도 않는다. 시즌2에서 부대장(박희순 분)이 노을에게 했던 “너와 같이 삶에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것이 너의 임무다”라는 대사가 노을이 생각하는 자신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박규영은 “삶의 희망이 없기에, 같은 이유로 게임에 들어 온 참가자들이 또 다른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즉사가 아닌 다른 수단으로 고통을 주는 것은 영혼에 대한 고통일 수도 있기에 노을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행위”라고 말했다.

동시에 노을은 생사를 알 수 없는, 북에 두고 온 딸을 찾겠다는 유일한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또 한 명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는 “딸을 찾겠다는 아주 작은 희망이 전부이면서, 죄책감과 절망감이 동시에 지배하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극 중 노을이 ‘246번 참가자’ 경석(이진욱 분)을 구해주는 것도 경석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같은 부모 입장에서 공감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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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영은 “노을이 경석을 도와준 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부모의 감정과, 부모의 보호가 없이 살아갈 아이에 대한 감정이 뒤섞인 것”이라고 했다.

희망 없는 삶 속 메말라 버린 노을의 마음은 굳은 그의 표정과 몸짓, 극도로 낮은 톤의 목소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버석하고 건조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는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몸을 만들고, 연기 톤도 바꿨다. 노을이란 인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고민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부분이다.

박규영은 “이 캐릭터가 갖고 있는 감정선을 표현하기 위해서 외적인 버석함들, 피부 질감 이런 것부터 정리해 나가며 캐릭터를 쌓아나갔다”면서 “총기를 사용하려니 근육량이 필요했고, 동시에 잘 흔들리지 않는 견고하면서 단단한 몸짓을 표현하고자 운동으로 근육을 많이 키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을은 누군가에게 시선을 주는 일도 없다. 낮은 톤의 목소리를 사용한 것도 감정을 드러낼 의지와 가치조차 없는 인물임을 보여주고 싶어 그랬다”면서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음역이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오겜은 ‘단단함’을 배우는 과정…이젠 휴먼 장르 하고 싶어”
시즌 3이 공개된 후 일부 시청자들은 작중 노을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극의 흐름과 큰 관계가 없는 무의미한 서브플롯(보조적인 이야기)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박규영은 “노을은 노을의 방식으로 이 게임을 중단시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노을은 인간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가치를 아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럼에도 ‘인간성’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려 했던 기훈(이정재 분)과 비슷한 신념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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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계관에서 몇 가지 줄기가 있고, 그중 하나로 노을이 가진 감정을 잘 표현하려 애썼다”면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 가치를 갖고 있는 인물이 어떤 행동을 보일까’란 부분을 노을을 통해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박규영은 ‘배우’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단단함’, ‘중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배우로서 극 중 본인의 몫을 하기 위해서는 중심이 단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오징어 게임이었다. 박규영은 오징어 게임이 자신의 연기 인생에 ‘터닝포인트’라고 했다.

박규영은 “(오징어 게임은) 배우로서 가져야 할 ‘중심’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면서 “배우이자, 사람 박규영으로서 얼마나 진솔하고 겸손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지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디테일’에 유독 신경을 많이 쓴다는 그는 오징어 게임 해외 프로모션을 위해 따로 영어 공부도 했다. 많은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어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뉘앙스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함이었다. 그 덕분에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해외 행사에서 박규영이 보여준 유창한 영어 실력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도 사람과 사람의 일이다. 필요한 말만 해도 되지만, 조금 더 ‘박규영이란 배우의 진심을 잘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란 고민이 있었다”면서 “그런 부분에서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고, 작은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한 단어와 어휘를 따로 익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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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작품에서 웃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셀러브리티’의 서아리, ‘나인퍼즐’의 이승주, 그리고 노을까지 유독 속을 알 수 없는, 사연많은 캐릭터들이 그에게 닿았다. 박규영은 “‘오늘도 사랑스럽개’ 이후 쭉 버석하고 어두운 캐릭터만 맡았다”며 “다음에는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휴먼 장르를 해보고 싶다”며 바람을 전했다.

내년이면 데뷔 10년째를 맞는 그는 배우로서 세운 목표는 없다고 했다. 다만 인간 박규영으로서 세운 목표는 있다. 그는 “명확하게 내년에 이걸 하고 싶다든가, 앞으로 어떤 배우가 돼야겠다는 목표를 정하진 않았다”면서 “다만 지혜로운 배우이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은 명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