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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1호기 해체, 사회 대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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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1호기 해체, 사회 대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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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6일 오후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1호기(오른쪽 첫 번째) 모습. 연합뉴스

지난 6월26일 오후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1호기(오른쪽 첫 번째) 모습. 연합뉴스


조현철 | 신부·녹색연합 공동대표



국내 첫 핵발전소 고리 1호기 해체가 결정됐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했고 30년 설계수명을 10년 연장하여 2017년 6월18일까지 총 40년을 가동하고 영구정지에 들어갔다. 8년이 흐른 지난달 26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고리 1호기 해체 안건을 승인했다.



이를 두고 해체 시장이 가져올 경제 효과에 관한 얘기가 무성하다. 하지만 해체의 경제성보다 중요한 것은 해체의 안전성이다. 고리 1호기는 폐쇄 8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고·중·저준위 핵폐기물 복합체, 거대한 위험물 덩어리다. 안전을 우선하면 고리 1호기 해체는 지금 얘기하는 ‘즉시 해체’가 아니라 ‘지연 해체’를 고려해야 한다. 지연 해체는 핵발전소 가동을 중지하고 20년 이상 지난 후 해체하는 방식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 핵발전소 보유국은 대체로 이 방식을 택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반감기가 있는 방사선은 시간이 흐를수록 위험이 줄고 그만큼 필요한 기술력도 비용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리 1호기 해체는 다시 한번 핵발전의 본질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첫째, 핵발전은 안전하지 않다. 가동할 때뿐 아니라 폐쇄해도 안전하지 않다. 해체 승인이 영구정지 8년 만에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웅변한다. 아무리 거대한 시설도 이미 철거하고도 남았을 8년 동안 고리 1호기는 ‘해체 결정’을 한 게 거의 전부다. 해체계획서는 한수원이 5년 안에 원안위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3년이나 지연됐다. 핵발전소 해체는 계획서 작성도 어려울 만큼 위험하다.



둘째, 핵발전은 깨끗하지 않다. 고리 1호기 해체로 방사성폐기물 17만1708t 발생이 예상되고 여기에 사용후핵연료 167t이 추가된다. 이 폐기물 처리에 200ℓ 드럼통 8만개 이상이 필요하다. 핵발전소를 해체하면 중저준위 폐기물이 많이 나오는데, 경주 중저준위폐기물처리장은 점점 포화상태가 되어간다. 고준위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은 아예 없다. 지난 3월 제정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특별법에 따르면 2050년까지 중간저장시설, 2060년까지 영구 처분장을 마련한다지만, 아직 구체적 기준도 없다. 해체 과정에서 나올 핵폐기물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셋째, 핵발전은 경제적이지 않다. 고리 1호기 해체는 12년 이상 기간과 총 1조713억원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이걸 두고 핵발전소는 해체할 때도 경기 부양을 한다며 ‘경제 효과’ 운운하는 건 돈만 되면 뭐든 괜찮다는 자본의 논리, 괴물의 논리다. 핵발전소 해체는 결국 방사성 오염을 제거하고 환경을 복원하는 과정인데,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하는 거라고는 고작 핵발전소를 가동하기 이전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전쟁으로 파괴된 지역을 복구하는 것과 비슷한데, 전쟁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 훨씬 낫다. 핵발전은 애초에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파괴적 창조’에 불과하다. 해체 작업을 완료한들 방사성 오염을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까? 그곳에 주거시설을 지을 수 있을까? 거기에 입주할 사람이 있을까? 핵발전론자들은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근대 이후 우리는 과학기술로 ‘한계’를 극복해왔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한계의 극복을 진보로 찬양하며 ‘적절함’의 감각을 잃어버렸다. ‘충분함’의 감각이 없어지면서 한없는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유한한 지구에서 살고 있다. 다른 존재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한계를 피할 수 없다. 이 진실을 무시하는 것이 교만이고 우리가 오늘 직면한 기후위기를 비롯한 각종 문제의 근원이다.



우리는 8년 전 고리 1호기 영구정지로 핵발전에서 벗어났어야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우유부단한 탈핵 정책과 윤석열 정권의 핵발전 부흥 정책으로 공염불이 되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고리 1호기 해체는 무엇보다 탈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탈핵과 함께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맞추려면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을 하려면 공공 부문이 재생에너지를 맡아야 한다. 유한한 지구가 부가하는 한계를 생각하면 지금 생산·소비양식을 전환해야 한다. 사익이 아니라 공동선을 도모하는 공화국의 정부라면, 주권자인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정부라면, 무릇 고리 1호기 해체를 글로벌 핵발전소 해체 시장의 거점이 아니라 사회 대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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