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대주주 방어력 약화ㆍ기업활동 위축” 반대
행동주의 펀드 적극적 개입ㆍ주주 소송 남발
경영권 리더십 위축ㆍ‘식물 이사회’ 크게 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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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추진된 상법 개정이 오히려 국내 기업에 경영권 분쟁 위험의 경고음을 내고 있다. 정부·여당은 2일 상정 여부를 놓고 논점이었던 5개 내용 모두가 포함된 상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여야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상법 세부 내용에 합의하고, 3일 본회의에서 의결이 이뤄질 전망이다.
경제인 단체에선 이사 주주 충실의무와 경영권 집중투표제, 전자투표 의무화, 3%룰 등이 대주주의 방어력을 약화할 것을 우려한다. 행동주의 펀드의 전략적 개입이 난무할 경우 자칫 추진력 있는 경영전략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신정부의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며, 주주총회 시 전자투표를 의무화하고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는 게 골자다.
이 중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집중해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소액주주도 특정 후보에 표를 몰아 이사회 진입을 도울 수 있게 하는 장치다.
기존에는 1주당 1표씩 나눠 여러 후보에게 투표해야 했지만, 집중투표제에서는 1주당 이사 수만큼의 표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어 소수 지분으로도 이사 선임이 가능해진다.
집중투표제 강화는 대주주의 이사회 확보를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집중투표제 도입 시 소액주주 연합이나 외부 세력이 이사회를 장악할 가능성이 커져, 경영진의 리더십과 전략 실행력이 약화할 수 있어서다.
이는 재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8개 단체가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 논의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법개정이 기업 활동을 제약할 것이란 우려감이 제계 전반에 깔리고 있다. 지배구조 규제를 강화하는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투자와 인수·합병(M&A)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업이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경협과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공동으로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상위 600대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한 상법 개정 설문(112개사 응답)에서 이같이 조사됐다.
상장사 과반(56.2%)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기업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봤다. 반면 긍정적 이라는 응답은 3.6%에 불과했다.
기업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주요 이유는 △주주 간 이견 시 의사결정 지연 및 경영 효율성 감소(34.0%) △주주대표소송, 배임죄 처벌 등 사법리스크(위험성) 확대(26.4%) △투기자본 및 적대적 인수합병(M&A) 노출 등 경영권 위협 증가(20.8%) △투자 결정, M&A, 구조조정 등 주요 경영전략 계획 차질(17.9%) 등으로 나타났다.
상법 개정 이후 행동주의 펀드는 소수 지분만으로 전략적 개입이 가능해진다. 이미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기관투자자도 적극적인 주주제안자로 나서며 기업 경영에 대한 압박은 가중된 상태다.
잦은 주주 대립과 주주제안 속에서 기업 의사결정이 지연되거나, 경영진 리더십이 흔들리는 사례도 늘어날 전망이다.
상장기업인 전자장비업체 D사 관계자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기업 성과에 직결되는 벤처기업의 특성상 이번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전략적 투자가 위축되고 사업 전반이 보수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신사업 추진과 고용창출이 위축되는 등 기업 활동 전반에 상당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장기적인 투자나 연구개발이 위축돼 결과적으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오기업인 I사 관계자는 “지분 확대나 적대적 인수합병 등 악의적 의도를 가진 일부 투자기관이나 개인주주가 이번 상법개정으로 경영과 주요 의사결정을 반대하거나 지연시키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상법 개정이 경영권 분쟁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상법 개정 시 소송 남발로 이어져 기업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사의 충실의무 조문으로 모든 이사의 활동이 감시·제한되고, 나중에 잘못됐다고 판단될 경우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멸시효가 10년이기 때문에 이사들은 10년간 아무 일도 못 하고 전전긍긍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 제기 시 재판 과정에 통상 4~5년이 걸릴 것이기에 이사회의 경영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와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투데이/김우람 기자 (hura@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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