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정치현안과 사회적 난제에 대한 ‘한국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올바로 이해해야 합의가능한 해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심층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와 의견을 담고자 합니다.한국인에 대한 오해⑭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기일이 미뤄지고, 불확실성이 커지던 3월 25일 영국 BBC는 "한국사회, 정말 '내전'으로 치닫고 있나?" 기사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극단적 양극화 현상을 '내전' 상황으로 진단했다. 내전 경고는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옹호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층에서 헌재 판결에 저항할 것이라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반대다. 탄핵 인용에도 안정적 선거가 치러졌고, 새 정부 취임 이후 빠르게 정상국면을 되찾고 있다.
'인용될 경우 내전'이라는 우려는 1월 윤 전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방법원에서의 폭동 사태 여파로 보인다. 서부지법 폭동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자랑했던 대한민국이 한순간에 '법치를 부정하는 폭력'과 '정치적 불복'이라는 후진적 정치의 공간으로 묘사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여론도 그런 우려를 뒷받침했다. 3월 2주부터 헌재 판결 직전의 4월 1주 조사를 보면 "탄핵심판 결과가 선생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질문에 대해 열 명 중 네 명 이상이 불복 의사를 표출하고 있었다.
내전 우려를 낳은 요인들
여론조사를 내전 우려로 연결짓는 과정에서는 다음의 몇 가지 오해가 작용했다.
오해① 서부지법 사태 관여자들이 20대 남성이 주류였던 만큼, 헌재 탄핵판결에 가장 불복할 집단으로도 2030세대, 2030세대 남자들을 꼽는 오해들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라도 수용하겠다'는 승복의사는 20대에서 72%, 30대에서 57%로 가장 높았다. 오히려 40대는 46%, 50대는 41% 순이었다. 20, 30대 남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하겠다'는 응답 비율은 20, 30대 여성에 비해서도 일관되게 높았다. 지역별로도 승복 의향은 대구·경북이 66%로 가장 높았고, 대전·충청이 53%, 부울경남이 51%, 서울이 50% 순이었다. 불복 의향은 광주전라지역이 52%로 가장 높았다.
오해② 탄핵찬성파가 불복 의향이 더 컸다. 정치권과 언론의 통설과 달리 헌재판결에 대한 불복정서는 탄핵반대파보다 찬성파에서 높았다. 탄핵을 기각해야 한다는 탄핵기각층에서는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 불복 의향이 41%에 그친 반면,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탄핵찬성파에서 51%로 더 높았다. 정당지지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 55%,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40%에 그쳐 우려와 달리 탄핵심판 결과에 따른 정치적 불복의 동력은 탄핵찬성파에서 강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헌재에서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면 헌재 결정은 존중해야 한다는 법치의 가치와 헌정질서를 부정한 판결은 수용할 수 없다는 가치 간의 충돌이 오히려 컸을 것이다.
내란 현실화를 억제한 요인
헌재 판결 전 전체 국민의 40%에 달하는 응답자들이 불복 정서를 드러내 심리적, 정치적 내전 국면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그 40%에는 찬반 양쪽 모두가 포함된다. 특히 헌재 결정이 '5 대 3' 구도라는 음모설로 지연되면서 탄핵 기각 예상도 낳았지만, 만장일치 결정으로 불복층의 반발을 감소시켰다. 마지막으로 중도무당파층의 균형추 역할이다. 이들은 탄핵 찬성의 손을 들어주면서, 헌재판결에 대한 존중이라는 법질서 존중 측면에서 정치적 승복 분위기를 주도했다. 우려했던 정치적 불복·내전 사태를 억제하는 균형추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