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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구급대가 도착한 ‘돌봄의 응달’에서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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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구급대가 도착한 ‘돌봄의 응달’에서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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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구급대원들은 응급실에 환자를 인계할 때까지 병원에 머무른다. 사진은 환자 인계를 마치고 응급실 입구에서 들것을 정리하는 필자의 모습. 필자 제공

119구급대원들은 응급실에 환자를 인계할 때까지 병원에 머무른다. 사진은 환자 인계를 마치고 응급실 입구에서 들것을 정리하는 필자의 모습. 필자 제공




문경수 | 119구급대원





“구급출동, 구급출동! ○○구 ○○동 ○○아파트….”



벨이 울린다. 119방재센터에 신고가 접수되면 신고 위치, 출동 차량 등이 관할 119안전센터 사무실에 방송된다. 출동 지령이 떨어지면 밥을 먹다가도 뛰쳐나간다. 입에 한가득 밥과 국을 머금은 채 씹지 않고 삼킬 때도 많다. 속에서 음식이 올라와도 억누른다. 구급대원들과 신속히 구급차에 탑승하면 차량에 탑재된 태블릿에는 출동 위치, 신고 내용이 전시된다. ‘경로 안내’ 버튼을 누르고 속히 구급 현장으로 향한다. 거기엔 아픈 사람들이 있다.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구급대원은 신고자와 통화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나는 올해 5년차에 접어든 소방관이다. 제주에서 3년 일하고 지난해 2월 서울로 올라왔다. 보통 소방관이라고 하면 화재 진압 업무를 떠올리지만 내 업무는 환자의 병원 이송과 연관된다. 일천한 경력의 7할은 구급차 운전대를 잡았고, 지금도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다. 구급차로 입때껏 이동한 거리는 지구를 몇바퀴 돌 만큼은 된다. 산, 바다, 숲, 골목, 도심…. 차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밤낮없이 어디에든 간다.



서울에서는 구급차가 출동하면 현장까지 보통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막힌 도로야 비집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불법 주정차 또한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출동 업무 또한 규정에 따라 정해진 대로 하면 된다. 그렇게 환자를 병원에 인계하기만 하면 현장에서의 전반적인 구급 업무는 마무리된다.



그러나 일을 처리하고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경우가 적잖다. 바로 ‘돌봄’ 문제 때문이다. 한때 돌봄의 부재라고 하면 홀로 사는 노인이나 노숙자 등의 문제로만 인식했었다. 그러나 구급 현장은 알량한 편견과는 다른 장면을 보여주곤 한다. 엄밀히 따진다면 119구급대원의 소관 업무는 당면한 구급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고, ‘돌봄’ 문제는 그 바깥의 일이다. 그러나 어떤 구급대원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하지 않는다. 정밀한 행정 논리가 미치지 못하는 돌봄의 공백을 두고 망설인 게 한두번이 아니다.



가령 환자가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한번은 남편에게 폭행당해 머리를 다친 여성에게 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에서 만난 여성은 두통을 호소했다. 머리에 부종도 보였다. 남편은 집을 뛰쳐나간 상태였고, 병원 응급실에서는 보호자와 동행할 것을 요청했다. 신속한 진료가 필요해 병원을 설득했지만, 여성은 당장 집을 비울 형편이 아니었다. 돌도 안 지난 아기가 누워 울고 있었다. 친구도 부모님도 타지에 멀리 살아서 아기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여성은 머뭇거리며 말을 건넸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진료를 보는 동안 아기를 소방서에서 잠깐 맡아주실 수 있나요?”



야심한 시각, 소방서에서 아기를 돌봐줄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폭행한 남편을 부른 뒤에야 여성을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었다. 아기와 남편을 뒤로한 채 고개 숙이던 아내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환자를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는 당뇨 합병증으로 발이 괴사 중인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 멀끔한 아파트로 출동했지만, 지독한 시취 같은 것이 집 안에 가득했다. 한쪽 발엔 구더기가 끓고 있었음에도 그는 가족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병원을 가지 않겠노라고 한사코 고집을 피웠다. 패혈증으로 목숨마저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구급대원은 원치 않는 환자를 강제로 병원에 이송할 수는 없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대원들의 간곡한 설득이 이어져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는 있었지만, 결국 환자는 병원에서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현장에서 119구급대가 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소방관이기 전에 개인으로서 무력감을 느낀다. 대도시인 서울이라고 상황은 다르지 않다. 구급차를 타고 견고한 도심 곳곳을 누빌수록 고층 건물, 인터넷, 가로등, 활력, 젊음 같은 것들에 가려진 돌봄의 응달들이 눈에 밟혔다. 119는 시민들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고 호언하고, 포털에는 ‘빈틈없는 구급 대응 체계 구축’을 이야기하는 기사도 쏟아지지만,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는 돌봄의 비포장도로는 골목골목 끝이 없다. 현장에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있었고, 촘촘한 도시에는 길 없는 경로가 가득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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