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원대학교 초빙교수 (전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교수) |
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가장 많이 한 말은 이미 너무나 유명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봐, 해봤어?"
이 짧은 한마디엔 그가 회사를 경영하는 철학이 모두 담겨 있다. 새로운 일이 닥쳤을 때 한번 시도해보지도 않고 우물쭈물하는 것을 경계하는 한편 '안 된다' '못 한다' '안 될 것이다'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현대의 정신은 조직원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회를 놓치는 것이 과감하게 도전할 때보다 훨씬 큰 손실을 가져다준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게 했다. 늘 심사숙고하고 모든 일에 열 번, 스무 번 다져보고 하는 것도 기업의 문화며 방향일 수 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에서 얻을 이점은 생각보다 크다.
"설거지를 하다 그릇을 깬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한번 답해 보자. "그냥 넘어간다" "호되게 혼낸다" "그릇값을 물게 해 다시는 실수하지 않도록 한다" 등 여러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실수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미 깬 그릇을 어찌할 것인가. 대신 그릇을 깨트린 이유를 분석해서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아 세제에 문제가 있었구나' '내가 서 있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구나' '그릇을 들 때는 이렇게 드는 것보다 이렇게 드는 게 안전하구나' 등등. 한 번 깨달았으면 다음에는 어지간해선 실수하지 않는다. 그릇을 깬 직원을 칭찬할 수는 없지만 심하게 나무라면 다음부터 설거지대 앞에 서면 일단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다른 일을 맡아서 하면 좋겠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또 깨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우는 순간 업무성과는 떨어지고 실수를 거듭할 확률이 높아진다.
'실수'와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직원관리 문제와 직결된다.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 회장은 칭찬에 인색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신 칭찬할 때는 자필로 편지를 써 감동의 눈물이 흐를 정도로 '찐'하게 했고 혼을 낼 때는 아주 호되게 했다. 구두로 단호하게 나무란 다음엔 두 번 다시 거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를 '가점주의'라고 한다.
왜 시간과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가. 조직 내 사람을 관리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간과 기회를 관리하는 일과 연결하는 것이다. 시간을 낭비하거나 기회를 낭비하는 사업가는 성공할 수 없다. 모든 사업이나 의사결정엔 타이밍이라는 게 있어서다. 그걸 놓치면 사업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경영에서 시간과 기회를 놓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때 시간과 경영은 단순히 판매만이 아니라 그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프로젝트를 이야기한다. 신제품 개발, 조직혁신, 수출기회 등 모든 업무에 대해 똑같다. 바로 사장과 직원, 즉 조직의 역량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과 기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가, 이게 중요하다. 앞에서 말한 실패학습에 익숙한 직원들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부분 기회와 타이밍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 하지 않을 때 날아간다.
컨설팅을 할 때 사장들에게 물어본다. "시간과 기회를 놓치는 것이 누구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잘못은 사장에게 있다. 조직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빨리빨리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 조직원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도전하고 학습해 다음 도전에서 성공하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기회와 타이밍을 절대 놓치지 않는 것. 이 모든 역량은 바로 사장의 조직관리 방향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입에서 "못 하겠는데요" "안 해봤는데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지금 꼭 해야 하나요" "준비해서 나중에 해도 되지 않을까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해라. 설거지를 하다 깬 그릇보다 실패학습으로 무장한 직원을 잃는 것이 회사에 더 막대한 손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기왕 호원대학교 초빙교수 (전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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