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1935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배운성의 ‘가족도’.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소장품이다.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
한국 근대미술의 ‘얼굴’이 서울 강남 전시장에 처음 나들이를 나왔다.
지금 서울 삼성동 코엑스 부근에 있는 하나은행 플레이스원 빌딩 지하 1층 전시장에서 이 ‘얼굴’의 실체를 볼 수 있다. 바로 월북작가 배운성(1900~1978)의 대작 ‘가족도’다. 지난 28일 막을 올린 기획전시 ‘가족도―이국의 틀 속 친숙한 시선’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이다.
이 그림은 가로 200㎝, 세로 140㎝의 화폭에 제각각의 개성적인 자세와 표정을 보여주면서 전통 한옥 안팎에서 정면을 주시하는 17명의 대가족을 유화로 담았다. 1920~30년대 국내 화가 중 최초로 유럽에 유학하고 현지 화단에서 유일하게 활약을 펼쳤던 배운성이 1930~35년 고국의 가족과 지인들을 떠올리며 창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5년 독일 함부르크미술박물관 개인전에 출품한 뒤 프랑스 파리 화실로 가져와 보관했으나 1940년 나치 독일군의 침공으로 급히 파리를 떠나게 된 작가가 남겨놓고 가면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배운성은 해방 뒤 홍익대 초대 미술학부장을 맡으면서 좌파 예술 활동을 하다 1950년 전쟁 발발 뒤 월북해 평양미술대학 강좌장 등을 지내며 북한 사실주의 화풍의 기틀을 잡는 데 기여하는데, 말년까지도 파리에 남겨두고 온 ‘가족도’를 그리워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파리를 떠난 지 60년 만인 2000년 기적이 일어난다. 파리의 골동시장에서 당시 유학생이던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이 작가의 다른 잔존 작품 47점과 함께 ‘가족도’를 발견해 입수한 것이다. 이듬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굴 회고전까지 치르면서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이 작품은 빠질 수 없는 명작으로 재조명을 받게 된다.
다른 국내 작가들의 근대 작품과 비교하면 월등히 큰 화폭의 스케일과 인물들에 대한 탁월한 묘사 기법이 돋보인다. 서양 회화 틀거지에 조선의 전통 가옥 실내외 풍경을 녹여 넣은 구도도 인상적이어서 국내외에서 한국근대미술 기획전을 할 때마다 전시의 얼굴로 소개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도’는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미스터리한 요소가 가장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린 동기나 제작 과정에 관한 기록자료가 전무한 상황에서 그림 속 가족의 실체를 놓고 여전히 논란이 거듭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엔 그가 소년 시절부터 집사로 일했던 갑부 백인기와 그의 아들 백명곤 일가라는 설이 유력했으나 최근에는 배운성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묘사한 것이란 설도 제기되고 있다.
전시장에는 ‘가족도’와 더불어 전 원장이 파리에서 발견한 배운성의 다른 작품들도 나와 있다. 자신의 유럽인 부인을 묘사한 ‘화가의 아내’와 프랑스 작업 시절 절친했던 윤을수 신부의 어머니를 묘사한 ‘어머니 초상’, 조선 아이들의 놀이와 풍속을 묘사한 ‘그네 타는 아이들’ ‘제기차기’ ‘줄다리기’ 등 40여점에 이른다. 1930년대 유럽에서 그렸던 작품들인데 서양의 화법과 구도로 조선인의 정체성과 전통 문화를 구현하려는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관점과 방법론이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이 특색이다. 전 원장의 배운성 컬렉션이 국내에서 관객과 만나는 건 2020년 7~8월 갤러리 웅과 본화랑 등에서 열린 ‘배운성: 근대를 열다’전 이래 5년 만이다. 이 밖에 전 원장이 파리 유학 시절 수집한 로댕의 드로잉 등 프랑스 작가들의 소품 30여점도 감상할 수 있다. 8월28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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