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부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 제출과 관련해 첫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이재명 대통령은 나름 실용 행보를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 같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의 경우는 제외하고, 최소한 G7에서 보여준 이 대통령 행보와 대통령 취임 이후 외국 정상과의 통화 순서를 보면,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나름 합리적이라는 판단이다.
문재인 정권 당시 취임 이후 정상과의 통화 순서는 미국-중국-일본 순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일본-중국 순이어서 이 대통령을 뽑지 않은 국민도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의 국제 상황은 외교에 있어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가 절실하다. 이스라엘-이란 분쟁을 봐도 그렇다.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과 미국의 군사 개입 현상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와도 직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한미 동맹 범위 내에서 핵무장을 하자는 주장을 폈던 김문수 후보를 향해 “그러면 비핵화를 못한다”라고 말했다.
이상적으로 보면 이재명 대통령 주장은 맞는 말이다. 문제는 우리가 핵무장을 하든 안 하든, 북한이 과연 비핵화에 나설 것인가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진리’에 가깝다. 북한은 이미 많은 학습 효과를 가지고 있다.
우선 과거 리비아 사례를 들 수 있다. 리비아 카다피는 경제적 지원을 약속받고 핵개발을 포기했지만 결국 실각하고 목숨을 잃었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우크라이나는 졸지에 세계 3위 핵무기 대국이 됐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에 편입되어 있을 당시, 소련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핵무기는 통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당시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영국 등은 우크라이나에 안전 보장을 약속하며 핵무기 포기를 종용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핵포기 전제 조건으로 경제 지원과 안전 보장을 요구했고 미국은 ‘선(先)핵폐기, 후(後)보상’ 원칙을 주장했다. 하지만 결국 러시아와 미국, 영국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이른바 동시 행동 원칙에 합의했다. 즉, 미국과 러시아, 영국은 경제 지원과 안전 보장을 약속하고, 동시에 우크라이나는 핵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비핵화를 이행했지만, 돌아온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란이 핵무기 보유국이었다면 과연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금과 같이 ‘손쉽게’ 이란을 공격할 수 있었을까. 이를 고려하면, 북한처럼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는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핵무기가 필요하다 믿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북한과 이란은 지정학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다고 얘기한다. 지정학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이란은 북한과는 달리 미국 우방국과 인접해 있지 않다는 의미다. 이런 지정학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보유에 대한 집착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란을 보며 핵무기가 없는 나라들조차 핵개발 필요성을 인정하게 생겼는데, 하물며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망상’이다. 현 집권 세력 중 일부도 북한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북한 비핵화’ 대신 ‘북한 핵동결’을 주장한다.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동결’이라는 의미는 추가적인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 핵무기가 사라지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북한은 지금도 핵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5년 5월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지금까지 핵분열물질(플루토늄 및 고농축 우라늄)을 최대 90개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분량만큼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조립된 핵탄두는 최대 50개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의 동결 요구에 응하며 실리를 챙긴다 해도, 한반도 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니 남북 대화라는 것이 과연 이득이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이란과 이스라엘은 휴전에 합의했다. 휴전 합의 전날, 이란은 카타르에 있는 미군 기지를 공격했지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이로써, 이번 사태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우리로서는 한숨 돌리게 됐다. 특히, 이란이 미군 기지를 공격한 것이 체면 유지를 위한 이른바 ‘약속 대련’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란 역시 이번 전쟁 확대를 원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란과 이스라엘의 휴전 약속도 일정 기간은 지켜질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번 사태의 교훈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휴전이 됐든 안 됐든, 이미 이란은 미군 공격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번 휴전으로 가장 한숨 돌린 국가는 중국이다. 이란 원유의 상당 부분이 중국으로 수출되기 때문인데, 만일 이란과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의 무력 충돌이 지속됐다면 중국 중소 정유 업체는 물론 중국의 에너지 안보 전체가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다. 미국 제재로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이번 미국의 이란 공습은 중국에 대한 경고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중국을 아직도 이른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우리와 미국의 관계는 어려워질 수 있다. 여기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역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는 달리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지렛대로서의 역할도 쉽게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북한이 러시아에 밀착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정부는 문재인정부처럼 이념 지향적 외교를 한다면 아무런 실익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측면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입각한 미군 운용에 대한 대응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병력 4000여명 이상을 괌 등지로 보내 대중국 견제를 강화한다는 전략을 취하려 한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이게 현실화되면 자칫 우리나라에는 공군 전력이 주로 남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때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이 상당 부분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미국은, 먼저 전시작전통제권을 우리에게 이양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전시작전통제권을 우리에게 이양하고 유엔군 사령부를 일본으로 옮기겠다는 구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다. 이재명정부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종합적으로 보면, 과거 어떤 정부보다 이재명정부가 해결해야 할 외교적 과제가 엄청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주’와 같은 추상적인 민족주의에 매달려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추상적인 이념에 매달리지 말고 실용주의적 외교를 하는 것이 우리 국민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테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6호 (2025.07.02~07.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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