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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이 2025년 6월24일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
2024년 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내란은 꼭 6개월 뒤인 2025년 6월3일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야 진압됐다. 내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국회는 계엄 해제, 대통령 탄핵소추,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 3대 특별검사법 처리 등 중대한 일을 해냈다. 맨 앞에 서서 그 일을 이끌고 시민들의 폭넓은 신뢰를 받은 우원식 국회의장을 한겨레21이 만났다. 우 의장은 “정치적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확대돼야 윤석열의 내란과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주의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며, 2026년 지방선거에 맞춰 대통령 4년 중임제, 총리 국회 추천제 같은 권력구조 개헌을 1차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6월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다.
내란
―최근 6월항쟁 기념일 전후로 연세대와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화운동기념관), 대한성공회 성당 등 민주화운동 현장을 찾아갔다. 내란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되찾은 뒤여서 더 감회가 깊었을 것 같다.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내는 과정에서 희생당한 박종철, 이한열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한열 장례식을 치른 1987년 7월9일 나와 친구들이 그 행렬의 맨 앞에서 대형 만장을 들고 있었다. 지난 6월9일 연세대에서 열린 이한열 추모식에서 ‘한열이가 목숨을 잃어서 만들어낸 민주주의구나’ 생각했다. 6월10일엔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뀐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갔다. 박종철 열사와 김근태 선배가 고문당한 방에도 갔다. 정말 울컥하더라.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으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됐을까 생각했다. 6월10일 성공회성당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이 얼마큼 향상됐는가에 달려 있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완성돼야 정치적 민주주의도 완성된다’고 말이다.”
너무 이상했던 윤석열… 국회의장한테도 안면몰수
―우리가 지난 40년 가까이 민주주의를 단단히 발전시켜왔다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윤석열의 내란은 왜 일어났을까.
“윤석열이 너무나 이상한 대통령이었다. 원래 입법부와 행정부는 협력 관계다. 그런데 내가 (2024년) 6월5일 의장이 되고 나서 대통령의 축하 전화를 받지 못했다. 6월6일 현충일 행사에서 처음 만났는데, 거기서도 축하 인사를 하지 않더라. 결국 국회 개원식에도 오지 않았고 시정 연설(예산안 보고 연설)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중요 법안과 가족(김건희) 관련 특검 법안을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다 막았다. 여야의 갈등이 커졌고, 국회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윤석열이 이런 상황을 돌파하려고 계엄을 선포했다.”
윤석열은 2024년 9월2일 국회 개원식, 11월4일 시정 연설에 모두 불참했다. 대통령이 개원식에 불참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고, 시정 연설에 불참한 것도 2014년 이후 처음이다. 불참 이유에 대해 윤석열은 2024년 11월7일 기자회견에서 “박수 한두 번만 쳐주면 되는 건데, 악수도 거부하고 야유도 하고. 이거는 좀 아닌 것 같다. 특검법을 반복해 발의하고, 김 여사에 대해 동행명령권까지 남발하는 건 국회에 오지 말라는 얘기다”라고 주장했다.
―윤석열이란 괴물 말고 내란의 다른 이유도 있었을까.
“민주당 정부에서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부가 집권했을 때 정치적 민주주의가 국민 삶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고 물을 때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제도적 민주주의를 완성해가야 하고, 다른 편으로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후퇴 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오늘 국민의 사회 대개혁 요구를 잘 수렴해서 해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과제다.”
―2024년 12월4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할 때 의원들이 해제 의결을 좀 빨리 처리하자고 요구했다. 그때 우 의장은 “잠깐 계셔라. 국회의장도 마음이 급하다. 그러나 절차를 틀리게 해서는 안 된다”며 극도의 차분함을 보였다. 그걸 보면서 국민이 이것이 잘못되진 않겠구나 안도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계엄군이 들어와서 의장과 의원들을 다 잡아가면 어떻게 하나 불안감도 있었다.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대통령이 그동안 국회를 무시한 것이 ‘계엄을 하려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엄을 6개월 동안 준비했다면 국회 절차에 오류가 있으면 무효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물론 나도 마음이 급해서 밖의 상황을 주시했다. 보고를 들으니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지만, 밀고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둘째는 개회나 의결 시간은 혼자 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야 원내 교섭단체 대표들과 협의한다. 그래서 0시47분에 개회, 0시50분에 안건 상정, 새벽 1시에 의결했다. 여야 합의로 시간을 정했으므로 새벽 1시 이전에 일방적으로 의결하면 무효가 될 가능성이 컸다. 다만, 계엄군이 총을 쏜다거나 문을 부수고 들어오면 즉각 의결할 수 있게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런 사정 변경이 있으면 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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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2024년 12월4일 새벽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헌법 개정
우원식 의장 인터뷰 영상 주소 : https://youtu.be/ZkQBivFrnos
이날 인터뷰는 애초 헌법 개정을 염두에 두고 기획됐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해선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윤석열의 내란을 겪으면서 1987년 체제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왔다. 우 의장은 오랜 개헌론자로서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 추진 때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활약했다. 윤석열이 파면된 이틀 뒤인 2025년 4월6일 대선 전 헌법 개정을 제안했으나, 내란 종식이 먼저라는 강한 여론에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4월6일에 개헌 제안을 했는데, 엄청난 역풍이 불었고 사흘 만에 거둬들였다. 그때 이재명 대표를 포함한 여야 지도부와 사전에 상의한 내용 중심으로 발표한 것으로 안다. 왜 그런 역풍이 불었을까.
“4월4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이 파면되면서 내란이 일단락되니까 그때 개헌을 제안하려 했다. 그래서 사전에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나 다른 정당과도 논의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권력구조 개편을 먼저 하고 다음 지방선거 때 다른 내용을 충분히 논의해서 하자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3월8일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 취소로 풀려나오면서 국민이 지금은 내란 종식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당시 이재명 대표도 개헌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국민의 반대가 너무 세니까 지금은 안 되겠구나 하면서 한발 물러났다. 게다가 4월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윤석열과 가까운 사람으로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했다. 그걸 보고 나도 개헌을 안정적으로 논의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흘 만에 접고 대선 이후로 넘기게 됐다.”
―그때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가 “우 의장과 개헌을 상의했지만, 국민이 반대하니 그 여론에 따라 개헌 논의를 뒤로 미루겠다”고 설명했으면 우 의장이 비난받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섭섭하진 않았나.
“섭섭함이 왜 없었겠나. 다만 이 대표도 당황했을 것이고, 나도 당황했다. 통화도 한 번 했다. 당시 이 대표는 대선에 나가는 후보여서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대표는 개헌해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갖고 있었고, 결국 5월18일 개헌 공약을 발표했다. 큰길을 만드는 데 앞장선 사람으로서 내가 비판받을 수 있다. 큰길을 잘 놓으면 된다.”
―형님의 마음인가.
“아니, 형님의 마음이 아니고 민주주의가 꼭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5월17일 광주에서 5·18 전야제가 열렸는데,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다정하게 이야기하더라. 그때 이 후보가 ‘내일 개헌 공약 발표한다’고 미리 말하던가.
“마음으로 다 알았다.”
―새 정부의 개혁 과제가 많은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대통령과 여야 정당, 국회의장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이 대통령과는 소통이 잘되나.
“우선은 입법부 수장과 행정부 수반의 관계다. 그게 둘의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 측면이다. 윤석열 정권 때 입법부와 행정부 간에 아주 참담한 불신이 있었다. 그러나 나와 이 대통령은 충분히 대화하고 설득하고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경기도지사로 행정을 할 때 나는 당에서 을지로위원회(을을 지키는 위원회)를 했다. 두 사람 다 사회적 약자 문제를 중심에 놓았다. 그래서 2022년 대선 때 내가 당의 중진 중에서 제일 먼저 지지 선언을 했고, 경선 때 선대위원장을 했다. 정치 노선에서도 상호 신뢰가 있다.”
―내란을 겪은 지금 왜 개헌이 필요한가.
“한국이 식민지를 겪은 나라 가운데 선진국이 된 유일한 나라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두 기둥으로 그렇게 됐다. 그런데 지금 저출산, 고령화, 지역 불균형 같은 병리적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개헌이 필요하다. 특히 이번에 우리가 이 헌법을 가지고 비상계엄을 막아냈지만, 빈틈이 있었다. 예를 들어 비상계엄을 국회에서 사전에 승인받게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빈틈을 채워야 한다. 제도적으로 민주주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개헌이 필요하다.”
―개헌은 국민투표를 해야 해서 큰 선거에 부쳐야 한다. 그러면 2026년 지방선거, 2028년 국회의원 선거 때 해야 한다. 지방선거에 맞추려면 2025년 하반기에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지난번에 이재명 후보의 개헌 공약을 보면 대통령 연임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감사원 국회 이관 등을 지방선거나 총선거에 하겠다고 했다. 우선 지방선거에 개헌할 수 있게 국민투표법을 개정하고 개헌특위도 만들어야 한다. 정권이 안정되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몇 가지라도 개헌할 수 있다. 개헌 논의를 언제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여야와 협의하고 적절한 시기에 제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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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17일 오후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전야제에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나란히 앉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 우원식 국회의장. 공동취재사진 |
행정부-입법부 관계, 민주주의 수준과 연결돼
―개헌의 최대 관심사는 권력구조 개혁이다. 그런데 많이 거론되는 4년 중임제는 이승만, 박정희 장기 독재라는 나쁜 기억이 있다.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이승만, 박정희 때는 계엄을 하면 누구도 막지 못했다. 이번엔 계엄을 하니까 국민이 국회 앞으로 모였다. 우리 민주주의 회복력은 전세계가 경이롭게 바라본다. 이제 5년 단임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것이 화두다. 장기 독재를 걱정할 시대가 아니다.”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에서 많이 제안되는 방안은 대통령 4년 중임제(또는 연임제)와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다. 4년 중임제는 업무 수행을 잘한 대통령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총리 국회 추천제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견제하기 위해 사실상 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하는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에는 별 이견이 없지만, 총리의 국회 추천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총리의 ‘정치적 교착’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아예 총리제를 폐지하고 부통령을 두는 ‘미국식 순수 대통령제’를 제안하는 이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개헌 공약을 보면,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기 위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가 있다. 일종의 분권형 대통령제다. 이것을 도입하면 여소야대와 동거정부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과 총리가 대립할 수 있는데, 괜찮을까.
“대선을 총선과 함께 치르는 게 좋은지, 총선 2년 뒤 지방선거와 함께 치르는 게 좋은지 논란이 있다. 지금대로 하면 총선이 중간평가가 돼서 의회와 행정부 권력이 부딪치는 ‘정치적 교착’이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면 같은 당이 입법부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하게 된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에서 효율을 강조할지, 견제를 강화할지 문제다. 그것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과 연결돼 있다. 개헌특위에서 논의할 것이다.”
―이 문제의 대안으로 미국 하원처럼 국회의원의 임기를 2년으로 단축하자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총선을 치르고, 대통령 임기 중간에 또 총선을 치르는 것이다.
“국회의원 임기를 2년으로 줄이는 것이 우리 사회에 맞을지 충분한 국민적 토론이 필요하다. 선거 횟수를 줄이자는 국민 의견도 있다. 선거를 한 번 치르려면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4년 주기가 적절하다는 이야기도 많다.”
—행정부가 가진 부당한 권한을 국회로 돌려줘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예를 들면 행정부의 법안 제출권 폐지, 국회의 예산권 강화, 감사원 국회 이관 등이다.
“예산결산위원장을 해보니 예산안 심사를 다 못했는데, 12월2일이면 그냥 본회의로 넘어간다. 지금 제도는 행정부가 권한을 다 쥐고 있다. 예산 증액 권한으로 국회의원들을 요리한다. 예산결산 기획 단계부터 국회와 협의하게 해야 한다. 감사원에 대해서는 이재명 당시 대표와 논의할 때 회계 검사는 국회로, 직무 감찰은 총리실로 보내자고 했다. 행정부의 법안 제출권도 (대통령제를 만든) 미국에는 없는 권한이다. 이것을 온전하게 국회로 보내는 게 필요하다.”
―이번 내란에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구성 과정에서 국민 대표성과 비례성이 많이 결여됐다. 최근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전원을 국회에서 의석 비례로 추천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도, 대법원도 국민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는 구성이 아니다. 대통령의 의지가 전일적으로 관철된다. 그래서 이번에 여러 문제점이 생겼다.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을 임명할 때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계속)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우원식 국회의장 직격 인터뷰 2부 “국회 ‘로텐더홀’, 잘못된 이름 바꾸겠다”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75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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