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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답고 오묘한 게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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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답고 오묘한 게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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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한 하오밍이를 만났다. 타이베이도서전재단 이사장인 그는 최근 한국어로 에세이 ‘찬란한 불편’을 펴냈다. 양선아 기자

지난 20일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석한 하오밍이를 만났다. 타이베이도서전재단 이사장인 그는 최근 한국어로 에세이 ‘찬란한 불편’을 펴냈다. 양선아 기자


강렬한 빨간 테 안경에 특유의 환하게 웃는 표정. 그는 여전했습니다. 대만 출판그룹 ‘다콰이문화’ 하오밍이 대표 이야기입니다. 지난 2월, 타이베이도서전을 취재하러 갔을 때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대만 출판계에서 손꼽히는 ‘셀럽’이었고, 제게 대만 출판계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서울국제도서전에 왔습니다. 도서전 주빈이 대만이었고, 그는 몇개월 새 타이베이도서전재단 이사장으로 임명돼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빨간 휠체어를 타고 긍정의 기운을 뿜으며 도서전을 돌아다녔던 그가 인상적이었지만, 사실 저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한국 출판사 섬드레에서 한국어로 처음 낸 자전적 에세이 ‘찬란한 불편’을 최근 읽게 되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며 저는 그의 인생 이야기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한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목발에 의지해 유년기를 보내야 했던 그에겐, 이야기를 듣고 읽는 행위가 삶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까지 그는 무협 소설, 추리 소설, 연애 소설 그리고 ‘서유기’ ‘삼국지’ 등 고전 명작까지 두루 읽었고, 그렇게 다져진 독서 습관은 평생 이어졌다고 합니다. 불편한 몸과 수많은 제약 속에서도 그가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세계적인 출판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의 힘’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계단이 많은 부산에서 마치 목숨을 건 ‘암벽 등반’을 하듯 계단 오르기에 도전한 그의 모습에선 지치지 않는 삶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고, 새어머니와 관련된 일화를 읽으면서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든든한 보호막이었던 어머니가 자궁경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군요.)




오랜만에 어떤 책을 읽고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가 한국어로 정리해 낸 그의 인생 이야기에서 숭고함과 웅장함을 느꼈습니다. 내년이면 70살이 되는 그가 자신의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를 반추하며,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해석해 내는 작업은 제게 많은 영감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는 단지 ‘출판계 셀럽’이 아닌, 깊은 내면의 탐색자이자 철학자이며, 수행자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불교 신자인 그는 “인생은 상묘유희(최고의 아름답고 오묘한 게임)”라며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정리하는 과정이야말로 이 게임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자신을 인식하고 정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신의 ‘한계’를 찾아내고 그것을 돌파하는 것이며, 자신의 ‘파편’을 직면하고 그 속에서 ‘완전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돌파한 한계 너머에서 또 다른 한계를 찾고, 발견한 완전함 속에서도 새로운 파편을 보게 된다. 그런 후에 또다시 새로운 게임의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다”라고요. 이런 관점에서 그는 “새로운 제약이나 파편이 눈앞에 나타날 때 오히려 나는 기쁘다. 다시 한번 나 자신을 인식하고 정리하는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삶의 제약과 파편 앞에서도 이토록 경쾌하고 능동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그에게서, 저는 고통이나 고난 속에서도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가는 비법을 배운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넓고 매력적인 사람들은 이토록 많구나. 눈을 들어 더 넓은 곳을 보자.’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만난 이 책은 제게 커다란 선물이었습니다. 나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것을 돌파하며, 또 인생의 파편 속에서 또 다른 ‘완전함’을 발견해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책과의 만남이 또 앞으로의 제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기대가 됩니다. 역시 좋은 책은 언제나 설렘을 안겨줍니다.



양선아 텍스트팀장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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