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의원들이 27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상임위원장 선출을 비판하는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고영권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의 보이콧 속에 법제사법위원장과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등 공석인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추가경정예산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예결위원장을 양보할 테니 법사위원장 등은 추가 논의하자는 국민의힘 제안을 거절하고 강행 처리한 것이다. 야당에 협치의 손을 내밀었던 이재명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취지가 하루 만에 무색해졌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상임위원장 재분배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하루라도 빨리 추경안을 처리하려면 예결위원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결위원장뿐 아니라 야당이 요구한 법사위원장까지 일괄 선출했다. 야당이 반대하는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등을 우선 처리 법안으로 꼽은 여당으로선 입법의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원장을 양보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대내외 위기 극복을 위해 신속한 입법 지원이 절실하다는 명분도 작용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6대 국회부터 19대 국회까지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관행이 유지돼 온 배경에는 여야 간에 '견제와 균형'이란 공감대가 있었다. 20대 국회 전반기 원내 1당이 된 야당이 국회의장을 맡으면서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차지한 예외가 있었지만, 후반기엔 다시 관행을 따랐다. 6·3 대선 이후 여당이 된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원내 1당을 차지한 만큼 견제와 균형을 위해 법사위원장을 가져야 한다는 국민의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등 법사위 우회 수단이 있는 만큼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민주당의 상임위원장 선출로 다음 주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과 추경안 처리를 앞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취임 18일 만에 야당 지도부를 관저로 초청하고 국회를 찾아 몸을 낮춘 것은 사생결단식 정치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협치는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여당은 권력을 절제하고 야당은 대안 제시를 우선해야 한다. 당장 답이 보이지 않더라도 여야가 마주 앉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때 협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