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1호기(오른쪽에서 첫 번째)의 해체를 결정한 지난 26일 오후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 1호기 모습. 연합뉴스 |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 26일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해체를 결정했다. 국내에선 첫 해체 결정이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고리 1호기의 영구중단과 폐쇄 결정을 이끌어낸지 8년만이다.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완전 해체까지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해체계획서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대책이 충분치 않은데도 ‘즉시 해체’ 결정을 내린 것도 걸리는 대목이다. 정부와 한수원은 향후 ‘시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신중하고 투명하게 해체 작업에 임해야 할 것이다.
고리 1호기 해체는 장장 12년이 걸리는 길고 힘든 작업이다. 해체 비용만 1조713억원이 들 것이라고 한다. 원자로 등 설비의 방사능 오염 제거, 방사성 폐기물 처리 등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해체 과정에서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 167t를 포함해 방사성 폐기물만 17만1708t이 발생한다. 한마디로 고리 1호기 해체 과정은 그동안 외면해온 핵발전의 숨은 비용이 드러나는 ‘진실의 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한수원 등 업계에선 “해체 사업은 글로벌 해체 시장 진출의 시험 무대가 될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부터 내놓는다. 국제원자력기구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 원전 약 600기의 해체가 예상되는데, 원전 해체 산업을 선점할 기술력과 경험을 축적하는 기회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해체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뜻도 된다. 안전 보다 사업성만 우선시하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든다.
일각에선 가동 중단 원전을 20년 정도 그대로 둬 방사능 반감기를 거친 뒤 해체하는 ‘지연 해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한수원 등의 행태를 보면 산업적 활용 의도가 역력한 ‘즉시 해체’ 보다 신뢰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향후 10년간 원전 12기의 수명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과정에서 폐로 원전의 ‘지연 해체’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고리 1호기 해체로 쏟아질 폐기물들의 관리·처리 방안이 분명치 않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부지내 신설될 건식저장시설에 저장한다고 하지만 임시 방편일 뿐이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 2060년까지 영구 처분장 건립을 규정하고 있으나 미덥지 않다. 경북 경주에 핵연료가 아닌 중저준위 방폐장 하나를 건설하기까지 십수년 전국이 몸살을 앓았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 영구 저장시설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원전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나 다름없다.
고리 1호기 해체와 함께 한국 사회는 그간 외면해 온 과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전력수요가 큰 AI 산업의 등장으로 원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고 있지만, 핵폐기장 문제를 고려하면 원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재공론화는 불가피하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도 없이 핵발전을 이어가는 것은 미래세대에게 폭탄을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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