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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러운 나뭇가지·텅 빈 암석 형태를 바꾼 자연, 美感을 깨우다

매일경제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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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러운 나뭇가지·텅 빈 암석 형태를 바꾼 자연, 美感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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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딩 조각 'Forest Island'(2024).  PKM갤러리

스탠딩 조각 'Forest Island'(2024). PKM갤러리


화이트 큐브 형태의 전시장이 비밀스러운 숲속 정원처럼 바뀌었다. 관객은 숲을 거닐 듯 머리를 숙이거나 몸을 옆으로 비켜 가며 작품 사이사이를 걸었고, 그때마다 공간을 메운 조각과 회화, 설치 작품들은 저마다 손을 내미는 듯했다.

섬세한 미감을 자극하는 구현모 작가의 개인전 'Echoes from the Cabinet(캐비닛으로부터 온 메아리)'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 PKM+ 전시장에서 오는 7월 19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행잉·스탠딩 조각부터 회화, 드로잉과 작가가 처음 선보이는 세라믹 작품까지 다양한 매체로 제작한 신작 28점을 펼친다. 전시 제목 '캐비닛(Cabinet)'은 작가의 작업실이자 개인적인 기억과 철학적인 사유의 조각들로 이뤄진 마음속 아이디어 저장소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구 작가는 재료가 지닌 물성에 집중해 자연이 만들어내는 밀도와 리듬, 촉감, 균형 등을 실험적으로 탐구해왔다. 인공과 자연 사이에서 조화로운 미를 이루는 그의 작품들은 자연을 닮아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작가만의 독특한 시각과 사유가 깃들어 있어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준다. 이는 구 작가의 작업에서 질서와 무질서가 공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새롭게 시도한 세라믹 연작 역시 자연 재료의 물성과 작가의 시각을 동시에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업이다. 용암이 식으면서 굳어 단단한 암석이 되는 현상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겉보기에는 자연에서 채취한 암석과 비슷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조형물로 보자기처럼 그 안은 텅 빈 형태다. 구 작가는 "광물이 함유된 흙에 1250도 정도 고열을 가해 액체 같은 상태로 녹였다가 굳힌 뒤 유약을 칠하고 다시 굽기(녹였다 굳히기)를 6~7번씩 반복해 만든 것"이라며 "최대한 자연 암석의 생성 과정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표면에 표현된 무늬는 흙이 녹았다 굳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칠한 여러 색깔의 유약이 저마다 특성에 따라 흘러내리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마치 여러 광물로 이뤄진 지층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10여 개의 스탠딩 조각으로 이뤄진 'Forest Island'(2024)는 자연의 나뭇가지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각 조각은 수직으로 곧게 선 얇은 첨탑 같은 형태다. 이와 관련해 구 작가는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도 얇은 나뭇가지가 쉽게 꺾이지 않고 탄력 있게 흔들리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현상이 흥미로웠다. 그 균형감을 나무와 놋쇠(황동), 스테인리스 스틸로 구현한 작품"이라며 "작품의 끝 부분을 살짝 밀어보면 더 재미있다. 연약하게 흔들리는 것 같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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