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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사태 ‘다자배상’ 책임 두고… 두 재판부, 엇갈린 판단

조선비즈 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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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사태 ‘다자배상’ 책임 두고… 두 재판부, 엇갈린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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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펀드 판매사인 NH투자증권, 수탁사 하나은행, 사무관리회사 한국예탁결제원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다자배상’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린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앞서는 판매사와 수탁사, 사무관리사 등 세 기관이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는데, 최근에는 모든 배상 책임이 펀드 판매사인 NH투자증권에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다자배상은 5000억원대 손실이 발생한 국내 최대 사모펀드 사기 사건에서 책임 주체를 판가름할 주요 근거로 여겨진다.

27일 법조계와 증권투자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31부는 지난 2월 13일 넥센이 NH투자증권과 하나은행, 예탁결제원을 상대로 옵티머스 펀드 투자금 30억원을 돌려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NH투자증권이 투자금의 절반인 15억987만원을 넥센에게 지급하라며 하나은행, 예탁결제원에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펀드 판매사, 수탁사, 사무관리 회사가 이번 사태에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다자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이 소송은 원고와 피고 양측이 항소해 2심으로 넘어갔다.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사무실./연합뉴스



재판부는 NH투자증권에 대해 예탁결제원의 자산명세서를 통해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펀드 자산으로 편입된 것을 확인한 뒤 판매에 나선 점은 인정했다. 다만 실제 펀드에 매출채권이 확보된 것을 확인하지 않는 등 펀드의 실현 가능성이나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심사하지 않아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문제는 예탁결제원의 자산명세서와 달리 옵티머스 펀드에 비상장 사모사채가 담겨 있었다는 점이다. 넥센은 하나은행도 신탁업자로서 옵티머스 펀드의 자산을 관리했던 만큼 NH투자증권과 함께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자본시장법상 감시 의무가 없었다며 수탁사와 사무관리사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은행과 예탁결제원 담당자가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기관 차원에서 책임을 질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넥센)가 주장하는 주의의무 위반은 직원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에 지나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나은행과 예탁결제원이 사용자책임을 진다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이는 앞서 나온 다자배상 책임에 대한 판결과 온도 차가 크다. 앞서 녹십자웰빙 역시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투자금을 돌려달라며 이들 3개 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재판부는 투자 원금 20억원 중 10억9300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하면서 다자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NH투자증권과 하나은행, 한국예탁결제원이 함께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해당 판결은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다자배상을 법원이 인정한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들의 개별 사정보다는 전체로서 책임을 어떻게 분담하는 게 공평한지 살펴봐야 한다”며 “이 사건이 대규모 금융 사건으로 번진 데는 자본시장법이 각각 역할을 부여한 NH투자증권, 하나은행, 예탁결제원의 주의의무 위반이 상호작용을 일으킨 탓이 크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그래픽=정서희

그래픽=정서희



다자배상 책임은 피해액이 5000억원을 넘어서는 이번 사건에서 각 기관의 보상 규모를 결정하는 핵심이다. NH투자증권은 개인투자자에 대해서는 현재 투자금 전부를 배상하고, 하나은행과 예탁결제원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기관 전문투자자와의 소송 결과가 이번 구상권 청구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자배상 책임에 대한 법원의 엇갈린 판단이 나오면서 논란이 커지게 됐다. 투자업계에서는 당시 법적으로 주어진 펀드 판매사, 수탁사, 사무관리 회사의 감시 의무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는 소송 당사자들에게 법적으로 주어진 의무의 범위가 좁아, 한정된 의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중점적으로 판단한 재판부와 옵티머스 사태의 파장을 고려해 폭넓게 해석한 재판부의 관점 차이가 나타난 것”이라며 “다만 두 사건 모두 항고로 2심이 진행 중인 만큼 결국은 다자배상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재판부로부터 넥센에 대한 배상 책임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은 NH투자증권은 “옵티머스자산운용 직원들이 비상장 대부업체의 사모사채 인수 계약서를 보내면서도 공공기관 매출채권으로 입력해달라고 요청하자 예탁결제원이 그대로 받아주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요지”라며 “선관의무, 투자자 보호 의무를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로 항소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병철 기자(alwaysam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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