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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규제 놓고 외교 전선 격화…美 '관세 인상' 압박에 韓 ‘속도 조절’

디지털데일리 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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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규제 놓고 외교 전선 격화…美 '관세 인상' 압박에 韓 ‘속도 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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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조윤정기자] 미국이 상호관세 유예 연장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23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된 한미 관세 협상은 플랫폼 경쟁 촉진법 입법 문제를 비롯한 쟁점으로 긴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 백악관은 내달 8일 예정된 상호관세 유예 연장 가능성을 제시했으나, 협상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관세율을 일방 통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와 관세율, 무역 균형, 비관세 장벽 철폐 등을 두고 협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입장이다.

이처럼 한미 간 무역 협상이 중요한 분기점에 놓인 가운데, 한국이 추진 중인 플랫폼 규제를 둘러싸고 미국과의 외교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구글·애플·메타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한국의 입법을 ‘자국 기업에 대한 차별’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미국 행정부는 무역 협상과 관세 문제를 연계해 사실상 입법 중단을 압박하고 있다.

◆ “입법 멈춰라” 美 압박… 韓 플랫폼법에 관세 카드 꺼냈다

24일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하워드 루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최근 관세협상을 위해 워싱턴DC를 방문한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의 고위급 회담에서 플랫폼 규제 법안에 대한 우려를 직접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인상’ 가능성을 무역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 한국 측에 광범위한 양보를 압박하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익명을 요구한 협상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 측은 한국 국회에 계류 중인 ‘플랫폼 경쟁 촉진법(PCPA)’의 입법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법안은 시장 지배력이 높은 플랫폼 기업을 지정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다중 플랫폼 진입 방해 등의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매출액의 최대 8%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해당 법안의 주요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미국 정부가 입법 저지에 나선 것이다.

앞서 미국 상공회의소 또한 지난 16일 성명을 내고 “디지털 경제와 관련해 미국 기업에 부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플랫폼 규제 시행을 한국 정부가 자제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힌 바 있다. 찰스 프리먼 미 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수석 부회장은 “해당 법안은 특정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 이는 국제 무역 합의를 위반할 소지가 있으며, 한국의 성장과 장기적인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역시 올해 3월 발표한 ‘2025 국가별 무역평가 보고서(NTE)’에서 한국의 플랫폼 규제 법안을 대표적인 비관세 무역 장벽으로 지적하며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USTR은 해당 법안이 미국 빅테크 기업뿐만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등 한국 대기업 두 곳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보이나, 주요 한국 기업들과 해외 기업들은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은 단순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무역 압박 수단으로 관세 카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FTA 체결국인 한국에도 여전히 강경한 통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산 철강·자동차·배터리 등에 대해 최고 25%의 관세 부과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오는 7월 8일 협상 결과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

◆ "대미 통상 협상에 악영향 안돼"… 韓, 플랫폼 규제 ‘브레이크’

이처럼 외부 압박이 커지자, 한국 정부는 한 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최근 산업통상부와 국정기획위원회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온플법 추진 계획에 대해 “대미 통상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입법 속도 조절에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당분간 국회의 논의에 맡기고 직접적인 입법 추진에는 관여하지 않는 ‘전략적 유보’ 태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각에서는 미국의 압박에 정부가 과도하게 위축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플랫폼 규제는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 중 하나로, 디지털 경제 내 공정 경쟁 기반을 확립하고 소비자 권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특히 국내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 기업까지 동일하게 규제 대상으로 포함된 만큼, 특정 국가를 겨냥한 법이 아니라는 게 한국 정부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은 2023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경쟁 촉진법(PCPA)’ 초안을 마련하며 기술 기업의 독점 구조 해소를 위한 제도적 기반 구축에 힘써왔다. 이후 이재명 정부는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을 목표로 내세우며, 공정한 디지털 생태계 조성과 중소·신생 플랫폼 기업의 성장 기회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입법 과정에서는 외교적 부담과 통상 마찰 가능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정부와 국회 내에서도 대응 전략을 조율하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한편, 이번 협상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대미 무역 환경 변화에 민감한 시점에 진행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 여파로 한국은행은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정부 고위 당국자 간 협상이 향후 플랫폼 규제 입법과 한미 무역 관계 전반에 어떤 방향성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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