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6월24일 오후 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중구 장교빌딩으로 출근하며 건물 들머리에서 노숙 농성 중인 김정봉 금속노조 동부지역지회 부지회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25년 전 경기도 의왕에 있는 철도인재개발원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처음 만났다. 철도청 운전직으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부기관사로 일을 시작해 일정한 경력을 쌓으면 기관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부기관사들의 목표는 당연히 기관사가 되는 것이고 이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큰 부담을 하나 덜어내는 궁극의 통과의례였다. 기관사 시험에 합격한 전국의 부기관사들은 철도인재개발원에 입소해 강훈련을 받는다. 이 과정을 이수해야 기관사 자격증을 받고 비로소 열차를 운전할 수 있다.
3개월 합숙 과정으로 진행되는 교육 특성상 전국의 승무 사업소에서 기관사 등용반 과정에 입소한 학생 기관사들은 기수별로 끈끈한 동료애를 갖게 된다. 김영훈은 기관사의 꿈으로 가득 찬 입소생 70명 가운데 하나였고 나 역시 그 일원이었다. 교육생들은 교육과정 자치를 책임질 대표를 뽑아야 하는데 당연히 김영훈의 몫이었다. 부산 출신인 김영훈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비연고지인 서울로 강제 전출당한 상태에서 기관사 시험에 합격해 교육생이 된 상황이었다.
TV 심야토론 맹활약, 철도 노동자의 스타 되다
![]()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2025년 6월23일 경북 김천역에서 아이티엑스(ITX)-마음을 운행하려 열차에 탑승해 배웅 나온 역무원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현직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기관사이며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다. 연합뉴스 |
교육생들은 회비를 갹출해 수업에 필요한 보조자료의 복사나 간단한 간식거리를 강의실에 비치했다. 하지만 회비의 상당 부분은 강의 교수들에 대한 접대비로 쓰였다. 교육생은 3개월 교육과정 동안 세 번의 시험을 봐야 한다. 최종 시험에서 과락이 되면 기관사 자격증을 못 받고 다시 입소해야 한다. 학생들은 돈을 걷어 교수들에게 몇 차례 고급술을 접대했다. 그 대가로 교수들은 과락을 당하지 않을 정도의 힌트를 주는 것이 관례였다.
김영훈과 교육생들은 악습을 끊기로 했다. 나중에 입소할 후배 기관사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김영훈은 자치회 대표 자격으로 교수실을 찾아 지금까지 관행으로 진행된 교육생들의 교수님 접대 자리가 이번 기수에서는 없을 것이라고 전달했다. 학생들의 요구는 너무도 정당했고 이런 관행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교수들도 있었기에 접대문화는 사라졌다.
김영훈은 혹시 시험에 불이익이 있을까 염려하는 교육생들에게 절대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교육생들은 접대비로 쓸 비용으로 교육과정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자고 결정하고는 강의와 실습 과정, 숙소 생활 전반을 영상으로 담아 졸업앨범을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교육과정 내내 강의실 뒤편에 서서 6㎜ 테이프를 쌓아놓고 삼각대와 카메라를 조작하는 촬영감독을 해야 했다.
누구나 불편해하고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일이 세상에 얼마든지 널려 있다. 김영훈은 학생 자치 대표를 맡을 때도 노조위원장을 할 때도 일관되게 문제와 씨름한 노동자였다.
김영훈은 변하지 않기 위해 계속 변해야 한다는 말을 종종 했다. 노동이 존중받는 시대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초심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노동운동가를 자처하는 일부 사람은 20년 전에 봤던 이론서의 틀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거나, 1년 내내 책 한 권은커녕 정책 자료집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상투적인 말을 반복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새 세상을 이야기한다. 변하지 않기 때문에 썩는 것은 당연하다.
김영훈이 철도의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계기는 2000년대 초 철도 민영화를 추진하던 시기였다. 한국방송(KBS) 심야토론에서 조목조목 민영화의 문제점을 밝히고 정부와 상대 패널 논리의 오류를 지적해냈다. 철도 노동자들은 자신과 같은 현장 노동자가 텔레비전에 나와 당당하게 공공철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는 그의 팬이 되었다. 김영훈은 거저 스타가 된 게 아니다. 그는 철도 노조 간부를 맡거나 위원장이 되어서도 책상 위에 더미로 책과 자료를 쌓아놓고 연구하고 분석하고 글을 썼다. 현장의 요청이 오면 전국 어디라도 달려가 대화하고 교육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은 노력파다. 이런 열정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서도 시들지 않았다. 김영훈은 뭉뚱그려진 문제들을 정형화하고 해결 가능한 과제로 전환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독서를 쉬지 않는 사람이며 상대편의 주장을 인내심을 갖고 경청하는 사람이다.
이변이라니… 비로소 ‘적임자’가 노동부 장관에
김영훈 노동부 장관 지명 속보가 뜨자, 일부 뉴스에서는 ‘이변’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파격 인사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따져보면 이제야말로 지극히 정상적인 장관 인사를 한 것이 아닐까? 장관으로 지명되는 순간까지 현장 노동자로 있었으며 공화국의 정신을 지키고자 ‘철도 공공성’이란 가치를 한시도 놓지 않았다.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거대 조직을 책임지고 사회적 대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했던 사람이 노동부 장관을 하지 않으면 누가 적임자인가?
김문수 전 노동부 장관은 40년 전의 노동자 경험을 빌미로 노동 현장에 대한 이해가 높아 노동 개혁 과제를 수행하는 데 적격자라고 임명됐다. 김 전 장관은 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거나 노조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더니 내란까지 옹호했다. 노동부 장관이 노동자 권리를 부정하는 이상한 나라에서 비로소 고용과 노동이라는 부처 이름에 걸맞은 인사가 장관으로 발탁됐다. 명문대 엘리트 출신이 승승장구해 관료 체제의 일원이 되고 그들만의 세계관과 경험의 프리즘을 통해 시민들은 시혜나 경멸의 대상이 되는 것이 한국 정치와 관료제의 문제였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자 출신 아웃사이더 김영훈의 등장은 기득권이라는 거대 바위에 내리꽂히는 망치가 아닐 수 없다. 최소한 환경부와 노동부 장관은 국무회의에서 맹목적 시장 논리 속에 개발과 성장 담론으로 진격하는 다른 부처의 장관들과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공존이라는 환경과 노동의 가치를 저버리고 얻는 성과는 모래 위에 쌓은 탑이다. 시민과 노동자는 그만큼 기대가 크다. 노동부 장관 인사는 이재명 대통령의 어떤 인사보다 시대가 새롭게 변화됐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용과 노동의 문제는 장관 한 명의 개인기로는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넓게 퍼져 있는 노동 비하 인식, 그동안 자본이 뿌리내리고는 거둘 의사가 없는 관행적 반노동 조건과 조치,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재개와 보수 세력의 불신, 결국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보수 정당에 포섭된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공존하고 있다.
거기 가서도 수많은 전태일과 김용균 잊지 말길
이런 가운데 미조직된 노동자, 자영 사장이란 쇠목걸이에 묶인 특수고용직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단기 일자리 노동자의 현실은 참혹하기만 하다. 해결책이 안 보이는 청년 고용 문제는 한국의 지속가능성과 미래가 달린 과제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노동인력 감소, 정년 연장이라는 피할 수 없는 과제도 돌파해야 한다. 무엇보다 심각하게 일상화된 노동 안전 문제는 최우선으로 살펴야 할 과제다. 계속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꿈쩍 않는 반인륜적 제과 기업은 어떤 사회적 책임이나 죄의 대가도 제대로 치르지 않고 있다. 발전소에서도 죽고 공장에서도 죽고 공사현장에서도 죽는다. 동료 시민들이 살아서 퇴근할 수 없는 세상에서 누리는 나의 안락은 얼마나 잔인한 호사인가?
청년 기관사 김영훈이 불합리한 관행과 맞섰듯이, 노동부 장관 김영훈은 우리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관행과 반노동 행태에 결연히 맞서야 한다. 아울러 후보자 자신이 밝혔듯이 늘 초심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관 후보자는 인터뷰에서 서는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도 바뀐다고 이야기했다. 민주노총 출신이기 때문에 편향된 정책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물론 김영훈 장관 후보자가 보게 될 풍경은 이전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풍경 앞에서도 스크린도어 앞에 컵라면 든 가방을 놓아둔 채 삶을 마감했던 김군, 오늘도 플랫폼 위를 쉴 새 없이 달리는 수많은 전태일과 김용균들을 잊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박흥수 현직 기관사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
한겨레21 뉴스레터 <썸싱21> 구독하기
<한겨레21>과 동행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네이버 채널 구독하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댓글 블라인드 기능으로 악성댓글을 가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