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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필수의료 붕괴, 시간 여유가 없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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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필수의료 붕괴, 시간 여유가 없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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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 "'장한석' 동의 어려워…연대는 시기상조"
한 지역 병원의 응급실 모습.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한 지역 병원의 응급실 모습.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김창엽 |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이사장



공공의료 강화가 필요하다는 서론은 생략한다. 제목만으로도 이 글을 지나치지 않을 독자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해서다. 다만, 공공의료와 공공병원은 같은 말이 아니라는 점 하나만 강조하고 싶다. 공공병원 늘리기는 공공의료 강화의 한 방법일 뿐, 여러 수단을 동원해야 공공의료가 강해진다.



새 정권이 출범했으니 이재명 정부에 두가지만 당부한다. 첫째, 다음 대통령이 취임하는 2030년도 예산안을 짜기 전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비수도권 비도시 지역의 필수의료 붕괴를 막을 것.



공공병원을 지어야 하느니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느니 논쟁할 여유가 없다. 이 시각에도 곳곳에서 의사는 줄고 의원과 응급실이 문을 닫는다. 핵심 이유는 다들 짐작하는 그대로,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민간 병의원이 지역의 의료를 전담하는 상황에서, 인구가 줄어 의료시장이 축소되면 그 어떤 지원이나 경제적 유인도 통하지 않는다. 주민들은 먼 데로 의원을 찾고 타지로 원정 진료에 나설 수밖에 없다.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지금 새로 병원을 지으려면 아무리 짧아도 10년쯤 걸린다니(지역 공무원한테 들은 이야기다), 짧은 임기 동안 장기 계획만 짤 수는 없다. 보건소 기능을 확대하든, 아니면 괜찮은 병원이 있으면 사실상 공립병원처럼 지원하든 고르고 가릴 일이 아니다. 단지 한가지, 지방정부가 직접 계획을 짜고, 돈을 쓰며, 관리해야 한다. 형식이 어떻든 내용으로는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는 뜻이다.



돈이 어디 있고, 기획과 관리를 누가 하느냐고? 이제라도 지방정부에 책임과 권한을 주고 맡기라고 말하고 싶다. ‘지역소멸대응기금’을 비롯해 이 정도 자금은 충분히 쓸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라는 점, 나도 여러차례 들었다. 주민의 필수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뿐, 자원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방정부의 역량과 진정성도 의심하지 마시라. 이른바 중앙 언론이 보도하지 않고 국가적 의제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지역의 필수의료를 해결하느라 몇년 전부터 온갖 궁리를 다 하는 지자체가 여럿이다. 주민들의 삶터를 재편성하는 일에는 지방정부의 지식이 중앙정부보다 더 풍부하다. 주민 요구에 더 민감하고 정확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좋은 지방자치의 위력이 바로 이런 것. 많은 지자체가 이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혁신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둘째, 중앙정부와 국가 수준에서는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할 수 있는 정치적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기를 주문한다. 공공의료 강화나 공공병원 확대라는 개별 목표가 아니다. 인구가 줄고, 경제가 정체하며, 노인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대변혁 시기, 한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의료와 돌봄의 체제 전환이 핵심 영역 중 하나라는 데에 이의가 없으리라.



문제는 ‘어떻게’라는 질문, 즉 어떤 방법이 있는지다. 임기 5년의 단임 대통령제로 바뀐 뒤, 우리 사회의 모든 미래 전망에는 ‘장기’라는 것이 사라졌다. 미래 비전은 누구도 믿지 않는 그럴싸한 선언에 지나지 않고, 힘들여 중장기 계획을 세워도 실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 기후위기 대응이 어땠는지 생각해보라. 이젠 연구개발 투자조차 정부 교체에 따라 우왕좌왕하리라 예상하는 이가 많다. 보건복지 분야에서는 2006년 노무현 정부가 공들여 만든 ‘비전 2030’이 있지만, 목표 연도인 지금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 정도다. 공공의료도 여러차례 ‘종합’과 ‘장기’ 계획을 세웠으나 살아서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단기주의’를 강요하는 정치체제를 바꾸지 않고도, 공공의료 강화와 같은 체제 전환을 지속적으로 시도할 방법이 있을까? 곧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고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이 얼마나 반영될지 잘 모르겠다. 정책 차원이 아니라 체제를 바꾸어야 하는 긴박한 과제임이 분명하지만, 이 글에서 바로 답을 내기는 역부족이다. 한가지 단편적인 아이디어로, 국회를 통한 논의가 행정부보다는 좀 더 지속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정도다. 온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벌이도록 하는 것, 그 자체가 정권 차원의 과제일 수도 있겠다.



새 정부는 무슨 종합계획이니 위원회니 하면서 공공의료를 ‘다시’ 논의할 생각은 하지 말기 바란다. 혹시라도, 무슨 정책과 제도, 어떤 ‘선진’ 모델이 지역보건, 필수의료, 돌봄 재난을 단박에 해결해줄 것처럼 말해서도 안 된다. 사람들과 환자와 주민이 겪는 고통에 주목하고, 지역과 지자체가 이미 알고 있는 문제의식과 대안을 믿으시라. 장기 과제를 다루고 결정하는 안정된 논의 구조를 만들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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