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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여자’를 사랑하려는 ‘아픈 여자’의 도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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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여자’를 사랑하려는 ‘아픈 여자’의 도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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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의 저자 요하나 헤드바. 한국계 미국인 2세대 작가, 뮤지션, 미술가, 저술가, 점성술사다. 사진 이안 바이어스-갬버 ⓒ Ian Byers-Gamber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의 저자 요하나 헤드바. 한국계 미국인 2세대 작가, 뮤지션, 미술가, 저술가, 점성술사다. 사진 이안 바이어스-갬버 ⓒ Ian Byers-Gamber


매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 젊음, 급진성, 아슬아슬한 선정성, 에로스와 타나토스까지 총망라했다. 옮긴이들은 “이론이지만 자서전이고 고백이지만 실천하고 비판이지만 섹슈얼리티를 절대로 내려놓지 않는 끈적함”이라고 이 책을 표현한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는 괴물, 퀴어, 쾌락, 야망을 주제로 한 문예적인 장애 담론이다. 저자는 2010년대 중반 디지털 페미니즘의 세계적 확산기에 등장한 젊고 독창적인 아티스트 중 한명인 요하나 헤드바.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등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2세대 작가, 메탈 뮤지션, 미술가, 저술가, 점성술사다. 20대 시절부터 10여년간 상해와 복합적인 만성 질환의 발병으로 장애를 얻었고 계속 그 후유증 속에 살고 있다. 이후 만성질환자, 장애인, 논바이너리(이분법적 성별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규정하는 사람)로 자신을 정체화하면서 여러 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해 왔다.



2016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의 물결이 굽이칠 무렵 헤드바가 쓴 짧은 에세이 ‘아픈 여자 이론’(이하 ‘이론’)은 여러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지만 디지털 공간에서 세계 1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며 더욱 널리 알려졌다. ‘아픈 여자’는 특권적 존재가 아닌 존재들, 부인당한 정체성과 몸을 가리킨다. 저자는 이 범주에 노인, 장애인, 만성질환자, 유색인종 여성, 강간 피해 여성, 강간 피해를 입고도 말 못 하는 게이 남성, 싱글맘, 난민, 학대당한 아동 등을 두루 포함한다. 그 자신 논바이너리로서 서구 철학이 확립한 생물학적 이분법을 거부하면서도 ‘여성’, ‘여자’라는 성별 이분법적 용어를 굳이 채택한 까닭은 분명하다. ‘여성’이란 기호 안에서 소수자, 약자, 이등 시민, 피억압자, 없는 사람, 아닌 사람, 못 미치는 사람, 돌봄 보장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정치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 l 요하나 헤드바 지음, 양효실 외 4명 옮김, 마티, 2만8000원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 l 요하나 헤드바 지음, 양효실 외 4명 옮김, 마티, 2만8000원


‘이론’이 각광을 받은 뒤 아픈 몸, 장애, 질병 서사, 만성 질환 등에 관한 개인적 경험과 비판적 사유를 담은 글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헤드바의 글이 그런 흐름의 물꼬를 튼 단 하나의 사례는 아닐지라도 질병, 젠더, 장애 문제를 천착하는 거대한 흐름이 시작될 무렵 등장한 선구적인 문건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후 대폭 수정한 ‘이론’을 포함하여 10년 동안 써 내려간 이 첫 에세이에서 헤드바는 “아픈 여자들, 정신병자들, 괴짜 퀴어들, 펑크족들, 괴물들, 할망구들의 이야기”로 자기만의 서사를 완성한다. 특히 한국전쟁을 겪은 뒤 미국에 정착한 강인하고 무례한 할머니 이야기, 아버지 쪽의 혼종적인 핏줄과 어머니 쪽의 중독·폭력 성향을 용기 있게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 고백은 개인사에 그치지 않는다. 책은 뒤로 갈수록 모든 취약한 이들의 고통과 장애 경험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며 비판하고, 각 개인의 처지를 연결시키면서 정치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선언으로 점점 증폭된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비장애중심주의(에이블리즘·ableism)라는 이데올로기와 다수에게 억압적인 사회 구조이며, 만성 질환과 정신 질환으로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의 고백이야말로 정치적인 목소리라는 것이다. 침대에서 벗어나 시위에 합류하지 못하는 아픈 몸들은 목소리를 전할 수 없어 비정치적 존재로 간주되지만 모두가 죽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에 미래는 사실 고정돼 있다. ‘집’은 피난처였던 적이 없고, ‘건강’ 또는 ‘정상’이라는 신화는 특권이며, 장애와 아픔, 불안과 고통이야말로 절대다수의 미래이자 보편적 경험이라는 점을 폭로한다.



저자의 글쓰기는 일관된 논리라기보다 모순과 불안정성 위에서 전개된다. 그는 “공동체에 대한 약속은 지켜질 수 없으며, 연대에 대한 모든 약속은 실패한다는 사실”을 활동가로 5분 이상 일해보면 누구나 알게 된다며 위악적으로 말한다. ‘이론’으로 자신이 바꿔보고 싶었던 건 세상이었지만 그 글은 결국 자신을 바꾸는 데 그치고 말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계속 도전하고 싸움에서 패배할지라도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치유 시장이 얼마나 약자에게 가혹하고 착취적인지 알면서도 헤드바는 20년간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온갖 치료를 받는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가족’과 ‘건강’이라는 담론 속에서 혼돈의 쳇바퀴를 굴린다. 이 500쪽짜리 두꺼운 노란 책은 치유 글쓰기나 고백록이 아니다. 엄마, 할머니를 포함한 ‘아픈 여자’ 모두를 사랑하려는 ‘아픈 여자’의 아찔한 도전이다.



책의 본문 디자인은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개발한 고딕체를 주로 사용했다. 이 모양은 시력 저하를 겪는 이들에게 덜 복잡하게 보여 가독성이 높다고 한다. 글자 크기 또한 보통의 에세이 단행본들보다 조금 큰 10.8포인트로 썼다. 공역자인 미학 연구자들은 주어 하나도 허투루 옮기지 않으며 글의 미감과 비애감을 더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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