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의 도시관찰일기 l 이다 지음, 반비, 1만9500원. |
“현관에 들어서는데 건물 앞에 활짝 핀 노란 꽃 화분이 있다. ‘꽃이 피었어요. 같이 보고 싶어 잠시 여기에 둡니다.’ (…) ‘같이 보고 싶어서’라는 말이 머리를 때린다.”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열 받고, 흉흉하고, 공포스럽고, 사악한 내용을 담은 뉴스를 보는 데 쓰고 만다. 그러고 나면 밀려드는 건 내가 속한 공동체에 관한 환멸, 절망, 불행감…. 이 악취 나는 사이클을 끊으려면 도대체 무얼 해야 할까.
‘이다의 도시관찰일기’의 지은이 일러스트레이터 이다는 ‘관찰’을 제안한다. 핸드폰은 잠시 주머니에 양보하고, 관찰 일기장과 펜을 들고 가장 편한 신발을 신은 뒤, 현금 3000원쯤 챙겨서 문밖을 나서보라고. 걷다 보면 액정 속보다는 훨씬 나은 세상을 만날 것이라고 말이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꽃을 이웃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향기 나는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속 ‘경고문 도감’. 사연도 필체도 가지각색인 동네 경고문을 작가가 본 따 그렸다. 출판사 제공 |
믿을 수 없다고? 책을 읽다 보면 믿게 된다. 메타세쿼이어 나뭇가지에 걸린 열쇠, 전봇대 핀에 걸린 걸그룹 아이브의 시디(CD), 마트 당근 코너 위에 놓인 빨간 뿔테 안경…. 신종 설치 미술인가 싶었지만 이내 물건을 잃어버린 누군가를 위해 눈에 띄는 곳에 분실물을 올려놓은 행위라는 걸 깨닫는다.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대단히 인류애적 행동이다. 공감 능력,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지능, 현재 상황을 추정해 미래를 예측하는 사고력 그리고 이타심이 합쳐져야 한다. (…) 온 사회가 함께 만들어내는 고도의 사회화된 행동이다.” 인류애의 세례는 지은이도 받는다. 성심당에서 사 온 4만원어치 빵을 버스에 두고 내린 지은이는, 추리와 추적 끝에 탔던 버스에 다시 올라탄다. 빵의 행방을 묻자 갑자기 기사님이 웃는다. “무표정이던 기사님 얼굴에 씨익 하는 미소가 떠오른다. (…) 상대방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직전, 얼굴에 떠오르는 뿌듯함이다!” 빵을 되찾은 지은이는 전의를 불태운다. “누가 뭐 잃어버리기만 해봐라. 똑같이 돌려줄 테다.”
지은이가 사는 동네가 특별한 거라고? 그럴 리가. 그곳에도 가위가 그려진 ‘오줌 금지’ 경고문, 절대 돈 쓰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빚어낸 기상천외한 주차금지 설치물이 당연히 있다. ‘뒤짐 주의보’ 같은 다소 험한 경고문도 물론. 다른 거라면 “판단하지 않는” 마음이다. “판단하면 관찰이 아니라 사찰이 됨.” 판단의 자리를 메꾸는 건 상상이다. 저 사람의, 저 공간의 역사를 상상해 보는 일. 바닥난 인류애를 완충하는 방법은 의외로 멀리 있지 않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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