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부터 핵 개발 논란…제재↑
'저항의 축' 통해 '대리 병력' 활용
종파 간 갈등, 역내 패권 경쟁으로
하마터면 전 세계가 '세 개의 전쟁'을 마주할 뻔했습니다. 사태는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이란 전역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시작됐습니다. 공습 초반부터 호세인 살라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총사령관 등 군 수뇌부와 이란 핵 과학자 다수가 사망했습니다. 미국도 이란의 주요 핵시설에 대규모 관통 폭탄(MOP) '벙커버스터'를 투하하는 등 직접 개입했습니다.
분명 이번 분쟁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본 건 이란입니다. 이스라엘이나 미국에 먼저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아닌데 일방적으로 얻어 맞았습니다. 암살을 걱정해야만 했던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핵 협상에 나설 경우 '굴욕'이 불가피한 상황이고요.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숙적 이란에 제대로 본때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 정치적 위기를 돌파했습니다. 자신을 '세계의 피스메이커(평화중재자)'로 포장하고 싶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의기양양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제사회에서 이란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중동 내 반(反)미국·반이스라엘 세력(저항의 축)은 잠잠한 상태고요. 오히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스라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더러운 일을 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의 공습을 두둔하기까지 했습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행동에 대해 우려와 비판을 표명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왜 이란은 기습 공격을 일방적으로 당하고도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요?
'저항의 축' 통해 '대리 병력' 활용
종파 간 갈등, 역내 패권 경쟁으로
편집자주
매일 보도되는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역사 등을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5월 9일부터 격주 금요일에 만날 수 있는 '세계는 왜'는 그런 궁금증을 쉬운 언어로 명쾌하게 풀어주는 소화제 같은 연재물입니다.24일 한 이란 여성이 수도 테헤란 시내에서 열린 반미·반이스라엘 집회에서 자국 국기를 들고 있다. 테헤란=AP 연합뉴스 |
하마터면 전 세계가 '세 개의 전쟁'을 마주할 뻔했습니다. 사태는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이란 전역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시작됐습니다. 공습 초반부터 호세인 살라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총사령관 등 군 수뇌부와 이란 핵 과학자 다수가 사망했습니다. 미국도 이란의 주요 핵시설에 대규모 관통 폭탄(MOP) '벙커버스터'를 투하하는 등 직접 개입했습니다.
분명 이번 분쟁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본 건 이란입니다. 이스라엘이나 미국에 먼저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아닌데 일방적으로 얻어 맞았습니다. 암살을 걱정해야만 했던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핵 협상에 나설 경우 '굴욕'이 불가피한 상황이고요.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숙적 이란에 제대로 본때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 정치적 위기를 돌파했습니다. 자신을 '세계의 피스메이커(평화중재자)'로 포장하고 싶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의기양양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국제사회에서 이란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중동 내 반(反)미국·반이스라엘 세력(저항의 축)은 잠잠한 상태고요. 오히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스라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더러운 일을 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의 공습을 두둔하기까지 했습니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행동에 대해 우려와 비판을 표명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왜 이란은 기습 공격을 일방적으로 당하고도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요?
'준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생산 이어져
미국 민간위성기업 맥사 테크놀로지스가 제공한 위성 사진에 22일 이란의 이스파한 핵시설이 미국의 공습으로 파손돼 있다. 이스파한=AP 뉴시스 |
가장 큰 이유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들 수 있습니다. 페르시아 문명의 후예로 9,000만 명의 인구와 고지대로 둘러싸인 '시아파 맹주' 이란은 중동의 강국 중 하나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 국가가 핵무기까지 가진다면 전 세계에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방 국가는 물론 중동의 다른 국가도 이란의 핵 무장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2002년 이란의 반체제 단체인 국민저항위원회(NCRI)가 이란 중부 나탄즈의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을 최초로 폭로하면서 핵 개발 갈등이 시작됐는데요. 이란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때인 2015년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란 핵합의)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일방적으로 핵합의에 탈퇴한 뒤 대(對)이란 제재를 복원하자, 이란도 이듬해부터 우라늄 농축 농도를 높였습니다.
결국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는 지난 12일 20년 만에 처음으로 "이란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핵 사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고, 바로 다음 날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과 탄도미사일 발사대 등에 미사일을 퍼부으며 선제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미국은 벙커버스터 총 14발 투하 등 이번 공습을 통해 이란 핵 농축 시설이 완전히 파괴됐다고 선언했지만, 60%의 고농축 우라늄의 행방은 묘연하고 프로도 지하 핵시설도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는 기밀 보고서가 유출되기도 했습니다. 60% 농축 우라늄은 준(準)무기급으로 평가되는데요.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미국이 원하던 '이란 핵 저지'는 미궁에 빠지고, 오히려 이란이 핵 개발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남아 있게 됩니다.
'저항의 축' 지원으로 영향력 확대 꾀해
지난해 10월 19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의 건물이 폭발하며 파편이 솟아오르고 있다.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
아울러 이란은 중동 내 친이란 무장세력을 조직·지원하며 역내 정치·경제·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해 왔습니다.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예멘의 후티 반군, 시리아·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등을 '저항의 축'으로 묶고 20년 넘게 '대리 병력'으로 활용했죠.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직선거리가 1,585㎞나 되다 보니, 이란 입장에서는 이스라엘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리 세력을 이용하는 게 편했을 겁니다.
이렇다 보니 이란은 주변국 간 갈등과 내전을 이용, 중동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영국 BBC방송도 "광범위하고 지리적으로 분산된 동맹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이란은 원할 경우 (개입을) 부인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며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낸다"고 짚었습니다.
다만 이번 전쟁에서 대리 세력들은 이렇다할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최근 1년간 저항의 축이 이스라엘의 공습과 비밀 작전 등으로 거의 궤멸된 까닭입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9월 헤즈볼라가 추적·감시를 피하기 위해 사용하던 무선호출기(삐삐)를 동시다발로 폭발시키는 작전을 성공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했습니다. 1년이 넘는 가자지구 전쟁 여파로 쇠퇴해진 하마스는 정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지난해 7월)에 이어 후임 야히아 신와르(지난해 10월)까지 이스라엘의 표적 폭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또 다른 친이란 세력이었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도 지난해 12월 몰락했죠.
'수니파' 인근 국가 "자제 촉구"만
예멘의 한 예술가가 23일 수도 사나에서 열린 '이란과 연대를 위한 공동 예술 워크숍'에서 지난해 사망한 하마스 수장 야히아 신와르(왼쪽부터)와 하마스 부총재 살레 알 아로리를 그린 그림 옆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나=EPA 연합뉴스 |
그렇다면 중동의 다른 이슬람 국가들은 왜 지원에 나서지 않는 걸까요. 일부 중동 국가들은 규탄 목소리를 냈지만, 이란 공습을 감행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규탄보다는 양측에 자제를 촉구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이는 오랜 종파 간 갈등이 역내 패권 경쟁으로까지 이어진 탓인데요.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은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카타르 등과도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심지어 UAE·바레인 등은 2020년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었죠. 이란과 사우디는 예멘 내전에서는 이란이 시아파 후티 반군을, 사우디가 수니파 정부를 지원하는 식으로 대리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이란은 오랜 기간 핵무기 개발로 국제사회에서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라는 이미지를 쌓았을 뿐 아니라, 대리 세력들을 통해 패권 확장을 추구해 왔습니다. 또 종파 간 갈등으로 중동 내 지역 분쟁에서 핵심 역할을 자처해 왔죠. 이를 보면 아무래도 이란을 '피해자'로 보는 동정보다는 종파·지정학적 패권 야욕을 가진 '경쟁자'로 보는 시각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과연 이란은 지금까지 가져온 욕심을 내려놓고 고립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